dcterms:title
stringlengths
2
111
dcterms:abstract
stringlengths
501
11.2k
nlon:keyword
stringclasses
4 values
length
int64
501
11.2k
叙任及辭令
●(叙任及辭令)任漣川郡守叙奏任官六等 順興郡守沈鍾舜○任順興六等 六品李喆和○任報恩六等 六品尹甯求○任文義六等 洪陵祀氶尹俊求○任長淵六等 六品徐彰輔○任陰城六等 六品洪承永○任白川六等 六品金河璿○任平壤六等 嘉山郡守金鼎植○任永柔六等 六品閔健植○任殷山六等 六品閔泳原○任肅川六等 歙谷郡守郭鍾元○任歙谷六等 六品具翊鉉○任連山四等警務官具範書○任大興六等 龍川郡守柳鳳根○任龍川六等 六品吳熙源○任靑松六等 全義郡守鄭道永○任全義六等 六品李斗淵○任文川六等 四品李象羲○任天安五等 六品趙漢肅○任鎭川六等 六品趙秉吉○任信川六等 五品金思弻○任昌城三等 從二品李敏兢○任楚山五等 正三品李匡夏○任榮川六等 前議官金光錫○任泗川五等 昆陽郡守閔箕鎬○任昆陽六等 六品河在鳩○任淸河六等 六品柳喬榮○任谷山四等 安岳郡守李義悳○任安岳二等從二品金完秀○任宣川四等 瑞山郡守金年圭○任瑞山六等 六品李基奭○任嘉山六等 四品劉興龍○任興海四等居昌郡守南萬里○任居昌五等 正三品洪世泳○任載寧六等 五品尹斗漢○任義興四等 正三品金榮浩○任大邱六等玄風郡守洪弼周○任玄風六等 漆原郡守李秉弘○任漆原六等 知禮郡守金蘭圭○任知禮六等 六品金熈元○任安州四等 正三品李 釆○任慈山五等 遂安郡守邊錫麟○任遂安三等 正三品申性均○任朔寧六等 甑山郡守李台稙○任甑山六等 陰竹郡守李秉德○任陰竹六等 麟蹄郡守鄭基恒○任麟蹄六等六品李胄夏 以上四月十二日任醫學校敎官叙奏任官六等 醫學校敎官南舜熈 四月十六日解分太醫院卿 正二品尹容植○命分太醫院卿 正二品李根秀○外部叅書官韓昌洙 度支部財務官金炳翕 解分秘書院丞○太僕司長李貞烈 正三品閔泳壽命分秘書院氶○解侍從院分侍從 農商工部會計局長金肯洙○正三品嚴錫周六品張容駿 命侍從院分侍從○弘文館侍讀閔泳復 敬陵叅奉貝元祖 章陵叅奉李忠鎬 依願免本官○任弘文館侍讀叙判任官六等 五品李寅奎○朱學任李在玩 李鎔模 金聲轍 李洪淳 白南圭 任通信司電話課主事叙判任官八等○任 敬陵叅奉叙判任官八等 尹世翼○任 章陵叅奉叙判任官八等 九品李承奎○命侍從院分侍御 鄭熈澤○命侍從院分主事 營繕司主事崔元章○任醫學校敎官叙判任官六等 洪鍾德○給三級俸 醫學校敎官南舜熈 以上四月十七日
정치; 기사
1,034
敍任及辭令
○敍任及辭令特免懲戒 正二品 李容翊 二月二十四日任義州府尹敍奏任官二等 前參書官 鄭海運 △任洪州郡守敍奏任官四等 法官養成所敎官 金祥演 △任寶城郡守敍奏任官四等 內部參書官 丁九燮 △任靑陽郡守敍奏任官四等 議政府主事 黃祐燦 △任鎭安郡守敍奏任四等 內部主事 安基宅 △任中和郡守敍奏任官四等 侍從院右侍御 金然尙 △任懷仁郡守敍奏任官四等 景孝殿令 金永德 △任興海郡守敍奏任官四等 侍從院左侍御 李碩瓘 △任善山郡守敍奏任官三等 咸安郡守 丁憙燮 △任咸安郡守敍奏任官四等 丹城郡守 金秉吉 △任綾州郡守敍奏任官四等 珍島郡守 權重冕 △任珍島郡守敍奏任官四等 淸風郡守 李秉化 △任橫城郡守敍奏任官三等 鬱島郡守 沈興澤 △任智島郡守敍奏任官四等 旌義郡守 蔡洙康 △任楚山郡守敍奏任官四等 正三品 李章遠 △任延日郡守敍奏任官四等 六品 閔容植 △任牙山郡守敍奏任官四等六品 鄭翰朝 △任新溪郡守敍奏任官四等 侍講院侍從官 李秉哲 △任內部參書官敍奏任官四等 前郡守 洪鎭裕 江原道觀察道主事 丁元燮 任江原道觀察道參書官敍奏任官四等 △任度支部稅務主事敍判任官七級 度支部主事 李基世 △免本官 全羅南道觀察道參書官 馬駿榮 右 該員이 敍任屢朔에 尙不赴任얏기 是以로 免本官 以上三月十三日
기사; 정치
559
敍任及辭令
官報●敍任及辭令○五月十一日任牙山郡鄕校直員 任兢準 △任石城郡鄕校直員 趙羲命 △任三陟郡鄕校直員 朴齊榮 △任江陵郡鄕校直員 金在軾 △任萬頃郡鄕校直員 姜禧淳 △任陰竹郡鄕校直員 朴遇鼎 △任漣川郡鄕校直員 洪元燮○五月二十四日前官立仁川日語學校副敎授 李根浩 仝 崔鼎夏 仝 茂田香 仝 西村秀雄 任官立仁川實業學校副敎授敍判任官三等 △前官立仁川日語學校副敎授 丁奎明 任官立仁川實業學校副敎授敍判任官四等○五月三十一日任內部秘書官敍奏任官三等 六品 徐丙業 △任林業事務所技師敍奏任官三等 渡邊爲吉 △任平海郡守敍奏任官四等 郡主事 沈相憲 △任智島郡守敍奏任官四等 前警視 金東佑 △任公立普通學校本科副訓導敍判任官五等 姜在玉龍南郡守 高羲駿 高靈郡守 兪鎭瀅 咸陽郡守 李章鎔 依願免本官 △免本官 興陽郡守 李龍相 右 全羅南道觀察使 申應煕의 報告書 據 즉 該員이 稱以公費고 人民의 錢穀을 多數 排斂야 專委首書記에 許多不正名目으로 費消이 明確 더러 現又以刑事被告로 拘留監獄얏오니 揆以官紀에 不可仍寘라 얏기 免本官(以上五月三十一日內閣) △依願免本官(五月二十四日內部) 郡主事 金淇薰 △免本官 公立普通學校本科副訓導 趙載乙 右 該員이 公立溫陽普通學校에 在勤인 바 受由上京야 過限不歸고 藉病圖免에 屢諭不遵야 規定 義務 背棄이기 是以로 免本官(四月二十九日學部) △公立普通學校本科副訓導 姜在玉 命公立大邱普通學校在勤(以上五月三十一日學部)
정치; 기사
669
斷指生▣效
●斷指生▣效 定州郡西湖學校生徒六人이同盟斷指은前報에已記얏거니와該郡有志士▣彛行洪成麟兩氏等이該斷指生에對이義捐金募集기로發文얏曰是何慘愕고本拾月六日郡西二十里外에在西湖學校講師生徒가俗節을過次로放學告別顧念校况이不完야無復有聚講之望으로慷慨演辭가區區傷痛이라環堵生徒가莫不揮淚推心니回想敎育이不振則家國이不興고家國이不興則身雖生存이나無所依歸라하야斷斷熱誠이發達乎學問하야以獻身的思想으로指天同盟而斷指하니想其氣槪컨新磨霜刃이不能屈六人之大謄하고老秃管城이已有草滿腔之活精이라一刃斷痕이均同左手之無名指則快知自裁之不撓요点血繡書가驅入團軆之愛國誠則丁寧他威之莫奪이라裏指呈郡에觀者膽落고聞者骨竦而郡守以下志士諸氏가爭捐義助니金籌交錯이라嗚呼라該校主務者│雖有熱心贊成이나其力不膽야遽有此擧니其在怵惕惻隱에孰不飮泣呑聲也리오事雖至慘이나推驗義勇면一聲晴天之霹靂이劈破全國之頑腦야使之警醒而激勵也니此生徒之異日捐軀衛國은質諸鬼神而無疑로다爲此布告야勸勉捐助노니至於多寡야馬駄千斤이오蟻負一粒이其義一也라幸表同情야協心贊成을百拜頂祝이라얏現今収合金이二百六十九圜에達얏다더라
사회; 기사
518
修路照請
▣修路照請 日公使代理萩原氏가外部에 照會한 內槪에 京義道路가 貴國交通上緊要者난 不待多論이어니와 在前에난 聞有時而加修繕이더니挽近該道가 因以破損하야 甚爲旅行者之困苦不便더러 我軍의 交通上에 困難이 尤甚한지라 是以로 我軍이切望修繕也니 査此道修繕이 非徒貴政府之職責야라 亦有我軍隊希望이기 自京城至安州第一期修繕方法을別記添呈하니 人夫石工材料供給은我軍隊가 貴地方官과 協議後에 不吝督役之勞난 貴政府應無異見이니 幸飭該地方官하야 俾便着手하되 潦炎前에 期要竣工케하라하고京義街道中京城安州間道路改修所要의 人夫石工爆藥等調書가 如左하니京城高陽間人夫三百五十八人內石工八人디나밋도 十二吉瓦、高陽臨津間人夫五百八十人內石工三百三十八人디나밋도 四百九十五吉瓦▣臨津開城間無、▣城金川間人夫千三百四十九人內石工二百二十七人디나밋도 九百八十七吉瓦、金川南川店間人夫百八十七人內石工七十七人디나밋도 九十二吉瓦、二五、南川店新酒幕間人夫▣六百二十八人內石工百九人디나밋도 百四十五吉瓦、新酒幕興水院間無、興水院鳳山間人夫百六十八人內石工四人디나밋도 三吉瓦、鳳山▣州間▣夫二千五百二十九人內石工二百一人디나밋도 二百十九吉瓦、黃州中和間無、中和平壤間人夫九十四人內石工三十人、平壤順安問人夫六千八百五十人內木工十人、順安肅川間人夫二千八百五十人、肅川安州間千八百五十人、合計人夫一萬八千四百四十三人內石工九百九十四人木工十人디나밋도 千九百五十三吉瓦二五더라
사회; 기사
642
리용익이가 북도에 남병로 갓슬 에 두번 이러난 민요가
원문 : ○ 리용익이가 북도에 남병로 갓슬 에 두번 이러난 민요가 무 졍령으로 셩을 학대 셔 인연 것과 금졈을 어지러히 어 독을 령의게 흘닌것이 어느 디방에 잇고 무 학졍을  야 셩이 엇더 독를 입은 것과 삼포를 늑탈 것은 이 어 삼포며 셰이 얼마에셔 더밧 셰가 얼마와 늑탈 엿다 것이 바로 셩의 삼을 셧다고 이른것이며 일원 리 큰 은젼을 짓지 안코 다 젹동 동으로 작은 돈 지흔것이 엇더 폐단과 가 잇지 일병 쇼샹히 버려 긔록 야 다시 고발 연후에 이에 가히 리용익을 불너 허실을 탐  일번역문 : ○ 이용익이가 북도에 남병사로 갓을 때에 두 번 일어난 민요가 무슨 정령으로 백성을 학대 한데서 인연 한 것과 금점을 어지러이 캐어 독을 생령에게 흘린 것이 어느 지방에 있고 무슨 학정을 행 하여 백성이 어떠한 독해를 입은 것과 삼포를 늑탈 한 것은 이 어디 삼포며 세액이 얼마에서 더 받는 세가 얼마와 늑탈 하였다는 것이 바로 백성의 삼을 뺏었다고 이른 것이며 일원 자리 큰 은전을 짓지 않고 다만 적동 백동으로 작은 돈만 지은 것이 어떠한 폐단과 해가 있는지 일병 소상히 버려 기록 하여 다시 고발한 연후에 이에 가히 이용익을 불러 허실을 탐핵 할 일
사회; 기사
625
敍任及辭令
官報○敍任及辭令前參書官 金澤榮 前郡守 玄采 從三品 劉漢承 前敎官 金夏永 方漢宗 命學部委員 三月一日依願免本官 宗廟署令 趙命煕 △任宗廟署令敍判任官七等 昌陵令 金弼鉉 △任昌陵令敍判任官七等 靖陵令 金海秀 △任靖陵令敍判任官七等 寧陵參奉 徐相珪 △任寧陵參奉敍判任官八等 慶基殿參奉 宋大鎭 △任慶基殿參奉敍判任官八等 鄭洛敎 以上四月六日祕書院丞 洪承斗 智陵參奉 朴用植 警務廳警務官 崔永祚 仝 盧興彬 仝 黃榮柱 仝 裴錫泰 甲山郡守 朴羲成 依願免本官 △任祕書監丞敍奏任官六等 正三品 鄭然甲 △任智陵參奉敍判任官八等 全性道 △任陸軍二等軍司 陸軍步兵副尉 李章雨 △補陸軍硏成學校敎官兼敎成隊附 陸軍步兵副尉 鄭煕鳳 △陸軍步兵參尉 劉冕洙 陸軍騎兵參尉 閔丙玉 補陸軍幼年學校學徒隊附 △補親衛第一聯隊第一大隊附 陸軍步兵副尉 金錫禹 △補親衛第一聯隊第三大隊附 陸軍步兵參尉 金洛圭 △陸軍步兵副尉 李應疇 陸軍步兵參尉 柳錫豐 補鎭衛第二聯隊第一大隊附 △補鎭衛第四聯隊第一大隊附 陸軍步兵參尉 金炳喆 △補鎭衛第三聯隊第一大隊附 陸軍步兵副尉 馬景煥 △補軍部經理局第一課員 陸軍一等軍司 金觀鎬 △補親衛第一聯隊第二大隊餉官 陸軍二等軍司 李錫璡 △補鎭衛第三聯隊第一大隊餉官 陸軍二等軍司 李章雨 △任陸軍武官學校敎官敍奏任官六等 前敎官 申佑善 △任陸軍幼年學校敎官敍奏任官三等軍器廠技師 洪鍾起 △前主事 金相淳 正三品 尹泰一 六品 尹泰殷 任陸軍幼年學校敎官敍奏任官六等 △任軍器廠技師敍奏任官二等 軍器廠所長 韓旭 △觧流行病預防臨時委員 九品 金容黙 △命流行病預防臨時委員 前醫師 李喜復 △任慶州郡守敍奏任官一等 從二品 尹泳奎 △任沔川郡守敍奏任官五等 咸興郡守 李喬永 △任咸興郡守敍奏任官二等 表勳院參書官 趙秉敎 △任新溪郡守敍奏任官六等 正三品 成奭永 △任肅川郡守敍奏任官一等 陸軍正領 申泰俊 △任甲山郡守敍奏任官三等 陸軍參領 李承鉉 △六品 李憲珪 公使館參書官 權鳳洙 六品 柳冀亮 警務廳總巡 崔台鉉 任警務廳警務官敍奏任官六等 △免本官 農商工部參書官 李一相 右該員初無請由閱月曠仕雖緣實病不可參恕是以免本官 △任農商工部參書官敍奏任官五等 農商工部主事 嚴台永 △任農商工部主事敍判任官六等 朴明緖 △外部參書官 魚允迪 命兼任農商工部度量衡臨時事務委員 上以四月七日祕書監丞 鄭然甲 濬源殿參奉 全昌烈 祕書監丞 趙鎭卨 通信院主事 吳在協 漢城電報司主事 李源昌 沃溝電報司主事 趙齊桓 警務廳総巡 金聖淵 依願免本官 △任祕書監丞敍奏任官六等 正三品 李寅奎 △任濬源殿參奉敍判任官八等 淑陵參奉 金直秉 △任淑陵參奉敍判任官八等 黃台勳 △任崇義殿參奉敍判任官八等 王會鍾 △任祕書監丞敍奏任官六等 正三品 李完洙 △任軍部主事敍判任官六等 陸軍硏成學校主事 崔永澤 △任陸軍硏成學校主事敍判任官六等 柳國馨 △任警務廳総巡敍判任官六等 前主事 權榮洙 △醫學校敎官 崔益煥 任親衛第一聯隊第三大隊陸軍軍醫補敍判任官三等 以上四月八日
기사; 정치
1,315
A number of Confucian scholars dressed in long-sleeved gowns have been seen kneeling
A number of Confucian scholars dressed in long-sleeved gowns have been seen kneeling before the new palace gate with a memorial before them. The document, of which we have secured a copy, in fulsome terms of exaggerated ◈ulogy and stale quotations from Chinese classics, prays His Majesty to marry again. The national calamities such as Tonghaks, Christianity, floods, droughts, famines, are all attributed to the fact that His Majesty remains a widower. in case His Majesty is unwilling to marry again, the memorialists beg that Lady Um should be promoted to the position of Empress, following the example of certain Chinese emperors of great renown
기사; 사회
650
法律
官報○法律 [前號續]第百四十一條 第百四十條의 功을 建 人이 建功기 前에 犯 罪가 發覺된 時 死刑에 二等을 減고 流刑이나 役刑以下 免罪을 得이라 但 減等이나 免罪은 一次에 無過이라 △第百四十二條 罪를 犯고 自首 者 左開에 依야 處斷이라 一 發覺기 前에 官에 自首 者 免罪이라 二 發覺되고 逮捕기 前에 官에 自首 者 二等을 減이라 三 輕罪가 發覺된 時에 因야 重罪를 自首 者 其重罪를 免이라 四 發覺야 訊問 場에 他罪를 自首 者 其他 罪를 免이라 五 人을 遣야 代首거나 祖父母나 父母나 子孫이나 兄弟나 叔姪이나 翁婿나 外祖父母나 外孫이나 雇工이 首告거든 亦히 犯人이 自首과 同이라 六 自首야도 不實거나 不盡 者 不實不盡 罪만 論호 死에 至 者 一等을 減이라 七 人이 告發코져 을 知고 自首거나 逃叛얏다가 自首 者 二等을 減고 其逃叛얏든 者가 自首 아니고 本所에 還歸 者 一等을 減이라 八 共犯 境遇에 發覺기 前이나 逮捕기 前에 自首야 其共犯 者를 告發逮捕케  者 一項에 依이라 九 財産에 犯罪로 被害者에게 首服고 其贓物及損害의 半數以上을 償還 者 竊盜已行未得財律에 依야 一等을 減고 全數를 償還 者 免罪이라 但 殺傷人이나 犯姦及干犯祖父母 父母나 放火의 罪를 犯 者나 反逆의 罪 自首야도 不減이라 △第百四十三條 八十歲以上과 八歲以上十二歲未滿者가 犯罪 時 本律에 二等을 減이라 [未完]
기사; 정치
743
COUNCIL OF STATE INDIGNANT
COUNCIL OF STATE INDIGNANT.Last Sunday night the Council of State held a special meeting and sent in a memorial to His Majesty, severely criticising the actions of the acting Minister of Foreign Affairs, Min Jongmuk for granting the land on Deer Island to Russia without consulting the Council. The terms used against the acting Minister are very damaging. All the members of the Council, including the whole Cabinet, excepting Mr. Min Jongmuk, resigned their offices on the ground that they could not hold their positions with any degree of self respect under such circumstances. His Majesty replied to the councillors almost immediately, as follows:―:Discussing state affairs by the Council is very proper, but We do not approve of the desire of resigning your o◈ces.\"(The memorial will be in our next issue.)
정치; 기사
812
宮廷錄事
官 報⊙宮廷錄事 皇帝勅諭百官萬民朕惟君國之道以民爲本建官分職簡賢任能惟求安民而已夫軆其君愛民之心推而行之使天下之民擧安其所者非公卿執事曁道臣守宰乎然其所以▣天下之民能安其所者無他道焉亦惟曰廉勤公信耳廉以臨民則民阜其財矣勤▣臨民則民敏其業矣公以臨民則民必無寃枉之不伸矣信以臨民則民必知法令之莫違矣自昔聖王哲辟所以致郅治成大業流懿聲於無窮者何甞不賴乎是朕臨御四十有餘載雖凉簿之德不克闡明 先王之大道而顧孜孜一念則未甞不在乎安民之方然惟是內而府部諸臣或因循恬嬉而不能導朕以拯救斯民之術外而地方官吏或貪鄙典忍不惟不能達斯民之情於朕而反以侵虐之使斯民憂患疾苦▣所控告往往敗其產業膏涸膚削濱於溝壑莫支朝夕甚至不耐困窮化爲盜賊白晝村閭肆行刧掠凶年饑歲橫暴尤甚嗚呼惟斯民孰不受 上天所賦予之生理者乎亦孰不蒙祖宗五百年仁漸義摩之澤者乎禀受生理而今不得生涵濡仁義而今反爲惡是豈本理亦豈本心念之至此不勝心寒肆朕首先反躬自責因親書廉勤公信以安斯民八字以下用以戒勗咨爾群臣揭此而明之如日如月奉此而守之如金如石克廉乃操見利思義克勤乃職殫誠竭慮克公乃心無黨無偏克信乃令立綱振紀俾疾苦蘇完盜賊屛息衣食充足禮義興行奠斯民於袵席之安如敢違越國有常憲惟爾民人亦各自思其道務農商以厚生理修學業以復良心克忠克敬克孝克悌父勸其子兄勸其弟友勸其友隣勸其隣胥圖底安無陷刑辟嗚平爾白官萬民尙克一乃心力軆朕至意與國家共臻凞皥之域長享▣平之福改諭 光武八年五月二十一日勅語 嗚呼라 朕▣惟컨 我 祖宗의 敎化과 德澤이 人心에 浹洽하샤 郅隆之治가至今五百有餘年이라 朕이 我 祖宗의 餘烈를 承하야 爾臣民으로더부러 無彊 丕基를 恪守하고 億萬斯年의 休命을 迓續하니엇지 慶幸이아니리오 然이나 國是가 不立하고 民志가 日渝하야 太平을 粉飾하고虛僞가 益滋하니 朕에 夙夜祗懼히야 薄氷을 履하고 深淵에 臨함과 如한바이라 今에政府를 命하야 學校를 增設하고 人材를 養成하야 衰頹한 運을 挽回하고 中興의 業을建立코져하노니 爾臣民等은 朕의 此意를深軆하야 毋怠毋忽하라 現今宇內各國은人民의 知識이 開明에 日臻하야 克富克强하고 獨立雄視하거 朕은 君師의 位에 在하야 敎育의 成就를 不見하니 心兮感然하야 中宵彷徨함이라 爾臣民等은 其自今으로 益加勉勵하야 子弟로하야곰 學業을 專心하야 粉飾과 虛僞를 去하고 奮發不已하야 國威와 國光을 宣揚케하라 嗚呼勗哉어다 光武八年五月二十三日太醫院都提調臣尹容善謹 奏本院日記之役浩大四品李命僖六品金東錫李濟奎並監督加差下何如謹上 奏 光武八年五月二十三日奉 旨依奏中樞院議官尹相衍辭職疏 批旨省疏具悉卿其勿辭行公○中樞院議官金奎凞辭職疏 批旨省疏具悉所請依施 以上五月二十二日法部大臣李址鎔辭職疏 批旨省疏具悉卿懇連寄不可遽解病如難强卿其調理行公▣遣部郞宣諭○議政▣贊政閔泳綺辭職疏 批旨省疏具悉情實亦宜可念所請依施 以上五月二十四日
정치; 기사
1,260
볼셩에 말기를 원과 원이 셔로 갑흐면
별보볼셩에 말기를 원과 원이 셔로 갑흐면 어늬에 쉬리요 얏스나 원도 각각 머리가 잇지라 헌탄 불셜만 밋고 원슈도 셕야 갑흘 각을 아니야 사마다 그러고보면 셰샹이 물륜야 션악에 권쟝과증계가 업슬지라 착사의 복음 밧것은 말것 업거니와 악사의 죄악이 관영고도 잠시 요으로 나망을 버셔낫스나 우흐로 텬일이 죠림시고 겻신명의 눈이 번갓흔지라 필경온 젼기를 엇지 바라리요 일젼에 오 근쳐에셔 엇더 녀인나히 지나가다가 엇더 사나희 나를 붓잡고 크게 소 질너 오 너도만날 가 잇나냐며 그 근쳐 지소 슌검의게 맛기며  말이 나 함경도 고원사 무당이러니 경향 물론고 무당은 쳔인이라 관속의 다반 침은 이로 말것 업거니와 져놈이 기시에 사령으로 젼량을 토다가못여 나의 남편을 잡아 가지고 가다가 즁노에셔 타살 엿 스나 져놈은 기시에 관속이요 나 잔쳔 무녀라 그고을셔 긔송여도 보슈슈 업셔 쳘텬지한을 먹음고 경셩으로 올나 와셔 인야 무당질 면셔도 엇지 면 져놈을 한번 만나 명졍 판 야 원슈 갑흘가 엿더니 명쳔이 도으시고 망부의 횬령이 지시여 오날날 져놈을 이곳에셔 만낫스니 원컨 이길로 판 야 나의 망부의 원슈를 갑하 달나 니 기시 관광지인이 슈명이라 모다 눈이 여 지고 가삼이 셔늘 여 그놈 다려 네가 거러 일이 잇야고 대강무른즉 그놈이 황황히 답호 기시에 나 혼쟈셔만 죽인거시 아니라 여러히 죽엿다 지라 슌검이 즉시 잡아 가지고 경무쳥으로 갓다니 이 이론바 하 그물이 널고 너르나 발가 이지 아니 다 이 이러 일을 두고 일름일너라 (미완)
사회; 기사
822
敍任及辭令
●(敍任及辭令)陞敍判任官七等 景孝殿令 尹俊求 ○陞敍判任官六等 景孝殿祀丞 徐廷隣 以上光武二年十月十五日陞正三品 掌禮院相禮 李鼎淵 光武二年十月二十三日陞嘉義 侍講院副詹事 趙漢國 ○陞正三品 掌禮院相禮 洪祐晳 以上光武三年四月十日陞嘉義 秘書院丞 李萬敎 ○陞嘉義 侍講院詹事 尹定求 ○陞正三品 掌禮院相禮 金炳軾 ○軍部協辦參將 金永準 命軍部砲工局及前馬政課査正委員長 以上九月二十四日秘書院丞 趙秉翊 掌禮院相禮 金炳軾 弘文館侍讀 李明稙 崇陵令 徐丙炎 徽慶園守奉官 金淑鎭 順昌園參奉 李昌敎 京畿觀察府主事 沈遠驥 慶尙南道觀察府主事 盧泳琪 依願免本官 ○依願免兼任太醫院少卿 秘書院丞 李範贊 ○命宮內府特進官敍勅任官四等 秘書院丞 李萬敎 ○命弘文館學士敍勅任官三等 正二品 金鶴鎭 ○命掌禮院卿敍勅任官三等 正二品 趙秉弼 ○任秘書院丞敍奏任官四等 奉常司副提調 鄭駿時 ○任秘書院丞敍奏任官六等 正三品 張世基 ○任奉常司副提調敍奏任官四等 正三品 趙秉翊 ○任掌禮院相禮敍奏任官六等 侍講院侍讀官 吳衡根 ○兼任太醫院少卿 秘書院丞 李貞烈 ○兼任掌禮院掌禮 秘書院丞 李範贊 ○任侍講院侍讀官敍判任官四等 弘文館侍讀 閔鳳植 ○任弘文館侍讀敍判任官七等 四品 白虎燮 ○任弘文館侍讀敍判任官七等 九品 李燦儀 ○任崇陵令敍判任官七等 尙衣司主事 金炳薰 ○任尙衣司主事敍判任官六等 太僕司主事 金昌鎭 ○任太僕司主事敍判任官七等 六品 徐丙炎 ○任順昌園參奉敍判任官八等 徐敦淳 ○任徽慶園守奉官敍判任官八等 李昇德 ○李圭璿 慶尙南道種痘事務委員 李公雨 任內部病院醫師敍判任官六等 ○任京畿觀察府主事敍判任官八等 趙麟元 ○任慶尙南道觀察府主事敍判任官六等 金達煕 ○朴正烈 孔在瓚 任咸興電報司主事敍判任官六等 ○金顯萬 金秉默 李錫禧 任海州電報司主事敍判任官六等 ○江界郵遞司主事 李奭愚 任淸州郵遞支司主事敍判任官五等 ○北靑郵遞支司主事 河正龜 任江界郵遞司主事敍判任官五等 ○城津郵遞司主事 康洪斗 任北靑郵遞支司主事敍判任官六等 ○任城津郵遞司主事敍判任官六等 呂昌奎 以上九月二十五日
정치; 기사
923
商業會議所貨幣矯救方策 (五)
威嚇的으로 使用 例가 非一非再니 事實上으로 論지라도 政府 所謂弗正貨로야금 正貨됨을 公認은 實노 証明이되지라若政府가 相當條規로 弗正貨 預防 責任을 盡力 蹤跡이 有하거니 文明國의 條規를 照鑑하야 違背치아니하얏스면 曷敢法律노써 弗正貨買를 受이라 制定이 有하리오 法律로써 不止貨◈受을 制定은 卽政府가 公認 事實自白 者이니 如此진 政府에셔 稱 不正貨 純然 法貨가될아니라韓日兩國政府가 共히 正貨로 公認바어날 然而政府 更히 不正貨의 稱으로 轉轉授受돈 箇人에게 損害를 歸케니其不法不合理 暴虐은 國民이 戰慄이 當百錢小錢當五錢의 通用禁止令과 同 政令으로 知바오 方今地方에 流通 通貨 專혀 政府가 稱 不正貨니如此虐政이 尙此遂◈오면 人民이 蒙 損害가 幾許될을 不知며 因야 如何 事變을 胚胎지도 莫測지니政府各國貨幣史에 鑑며 我國狀況에 照야 施行바 有니 法律을 修正야 正貨와 均一 制로써 民으로야금 不法으로 由야 蒙 損害를 免케것시 爲政에 明白 主旨오三政府 舊白銅貨交換規則을 六月二十四日部令을 六月二十九日官報에 發載公布야 翌七月一日븟터 實施니 凡文明國에셔 法律公布 慣例 緊急을 要 件에 限야 公布日로 施行이 有나然而遠近에 應야 施行期限을 制定나니 況加此公布 急迫을 要치안 法律이오 又重之國民休戚에 關 大問題에 對야 假令專制時代라도諮問府로야금 愼重이 審議盡力야 公布 後에 相當時日을 與야 諭告諭示야 民으로야금 明知케것이 法之精神이오 爲政者가 德義上에 當然 責務라
사회; 기사
776
伊藤大使歡迎
雜報●伊藤大使歡迎日本侯爵伊藤博文氏난 元老重臣也라 今番에 奉 日皇陛下特派大使之命하야 以慰問我皇上陛下하고 兼敦兩國之交誼事로昨日上午十一時에 仁港에 下陸하야大佛亭에셔 暫時休憩하얏다가 下午三時特別汽車를 乘하고 入城하난我皇上陛下셔 爲迎接特禮하샤命學部大臣閔泳煥氏로 爲迎接委員長하시고 又 命宮內大臣及禮式院長及迎接委員하샤 一同前往仁川하야 備盡迎接之儀켸하시고 又特 命各部大臣하샤 西門外停車塲지 前往迎接케하시니 盖侯之使命이 出於特畀而我廷之迎接儀節도 亦出於特禮也라 侯之來此난 爲益講敦睦之義而韓日之交際가 從此尤無間然矣라都人士女가 爭相瞻望하고 無不歡欣頌祝하야 迎拜車塵하고 翹拭以俟云이러라伊藤大使迎接節次一大使一行이 仁川着時에 迎接委員 長以下諸官吏와 宮內大臣及禮式 院長諸大官이 下仁迎接할 事一自仁川滊車로 別送 御乘玉座列 車하야 迎接할 事一大使着驛時에 迎接委員長以下各 大官이 迎接引導하야 大使舘으로 入할 事一大使入城한 翌日에 皇帝陛下 謁見할 事一外部大臣이 爲主人하야 請邀大使 一行할 事一大▣滯留舘中時에 以侍衛隊兵士 로 護衛케할 事一大使滯留난 約七日間이니 離城前 에 亦爲告別拜 謁하고 其下仁時 에 餞送儀式도 迎接時와 如할 事一大使回國에 自韓國으로 慰問大使 를 派送於日本할 事
사회; 기사
604
叙任及辭令
●(叙任及辭令)任法部叅書官叙奏任官五等 正三品金在亨 九月七日中樞院議金璿根 金憲濟 依願免本官○任中樞院議官叙奏任官四等 城津府尹鄭顯哲○任中樞院議官叙奏任官五等東萊府尹尹弻殷 以上九月九日肇慶廟令鄭海魯 通信司電話課主事丁奎五 依願免本官○任 肇慶廟令叙判任官七等 翼陵令李源斗○任 翼陵令叙判任官七等 昭慶園叅奉金商冕○任昭慶園叅奉叙判任官八等 朴正會 以上九月十日解署理大臣事務 度支部協辦高永喜○平理院裁判長金永準 命臨時署理度支部大臣事務 以上九月十一日 武官學校官制改正件第一條 武官學校 武官出身志願者를 抄選야 學徒에 充야 初級武官의 必要 敎育을 授 事○第二條 學徒選用은 陸軍將領尉官과 各府部院 勅任官이 各薦幾人고 各道觀察使가 以道內人으로 各薦幾人되 勿拘地閥고 只擇人材 事、但各觀察府에 預先通知야 薦報케 事、 一學徒의 年齡은 自十八歲로 二十三歲에 至고 身軆壯健며 聰明俊秀 者로 選拔 事、二學徒가 卒業기 前에 無緣厭退 者의 軍紀紊亂며 規則屢犯 者와 行爲不正야 悔悟의 目的이 無 者 卽爲退校케되 入學朔數를 計야 學費를 該學徒에게 懲捧 事、三學徒中意外疾病이 有야 不得成學 時에 醫官으로 檢査야 差復 望이 無 後에 元帥府檢查局摠長이 奏稟許免되 此境遇에 學費를 懲捧치아니 事○第三條 原額官費學徒外에 志願者가 有 時 以私費學徒로 許入되 試驗과 敎育은 官費學徒와 一軆로며 額數 五十名以內로 定 事○第四條 學徒를 幾個中隊로 分야 學徒隊를 編制 事○第五條 本學校에 左開職員을 寘 事校長一人 叅將或領官、副官一人 正尉、餉官一人 一二三等軍司、醫官一人 一二三等軍醫、敎官十四人 領官一人尉官十三人、繙譯官(或繙譯官補)三人 奏任或判任、主事二人 判任、學徒隊長一人 領官、學徒隊中隊長三人 正尉、學徒隊附十二人 副叅尉、助敎三十人 正副叅校○第六條 校長은 軍紀風紀內務服裝衛生及其他一船經理事務를 管理고 所管各隊長及敎官의 責任을 分擔케며 學徒의 敎育을 管掌며 元帥府檢査局摠長의게 對야 命令을 服行 事○第七條 學校副官은 校長의 命令을 受야 諸般命令을 傳達며 一般報告文簿의 事務를 擔任 事 (未完)
정치; 기사
1,066
僉照撮要
⊙(僉照撮要)各國公領事가 今番獄事에 對야 外部에 照會엿다말은 前報에 記엿거니와 今에 其槪意 聞즉 俄公使의 照會에 此次逆謀에 現發된 人을 取招時에만일 惡刑을 用면 分明 逆賊도 不著고 後患이 將有리니 本公舘官人一員과 醫人一員을 罪人被囚處에 無難出入케하되 倘不聽準시면 此 確實이 惡刑으로 取招이라엿고 美公使의 照會에 被囚人을 酷刑取招다야 俄使가 其酷毒을 確探고 遣醫往治코져거 貴國이 此를 拒니 此 酷刑을 施을 確知지라 大抵酷刑으로 勒服은 此世通例에 不合더러 貴政府에셔도 已廢거슬 復用면 本公使도 不得不理論겟다고 法公使照會에 事變主謀로 被告 者 金鴻陸이라 孔洪植과 及金妻並他罪人을 酷刑엿다니 如此境遇에 所供이 有지라도 無足可重이니 貴大臣이만일 明確히 示復아니시면 本公使가맛당이 人類의 普通權利를신야 貴國施刑 法을 拒겟다엿고 德公使의 照會 法公使와 同고 英公使의 照會에 今此酷刑一事가 果然浪說일진 外國人中에 衆所信服 者一員을 該獄內에 入케하야 拿獲者의 情形을 閱知하야 群疑 釋케하라하엿고 日本公使의 照會에 酷拷一事가 果然傳說과 如하면 人道通義에 相背이라하엿스니 大抵我政府에셔도 已廢 酷刑을다시 强用하야 甚至於外國各公使가 人類의 通行律例 違背하얏다고 詰責이 藉藉하니 此 外國에 慢侮 自取더러 更張以來로 聖上의 仁德으로 改良신 政法이 文明域에 漸次進步하거이졔 野蠻의 行爲를 復蹈코하며더욱이 罪囚가 自剌이니 被剌이니하야 滅口之計를 行코져하엿다하니아지못게라 其咎 誰가 執지
기사; 사회
774
沁校講演
雜報●沁校講演江華府士人 金東秀 金永培 吳商燮 氏等이 本社에 寄函기를 本年三月二十九日 私立育英語學校에셔 敎育發達기 爲야 講演會를 開設얏 學員 二百餘人과 學員父兄及傍聽內外國人 六百餘人과 出席 婦人 五十餘人이 諸般 討論을 얏 校長 李東暉氏가 敎育方針과 開明上 必要 演說과 外國人寄付金公佈와 學校就緖에 對야 可聞之說 數千言을 說明 後 討論問題를 提出기를 人民敎育 對야 剃髮洋服 거시 可다 問題로 學童 劉泰民이가 可便으로 演說기 世界列國으로 論之면 文明 上等國에 長䯻廣袖 藥材로도 難求니 剃髮洋服고 勤篤敎育 거시 可다 고 學童 金鍾萬이가 否便으로 演說기를 敎育이라  거슨 世界文明 上等國에 開金이라 敎育업시 剃髮洋服만 면 外飾其樣이오 內無其實이라 變形 것보다 敎育이 急先務라 고 其外學童도 可否 多數 討論고 第一奇異 事 婦人諸氏의 討論이라 校長 李東暉氏 夫人 姜氏가 演說기 我大韓國文明에 急先務 女子敎育이라 本夫人이 女學校設施기를 講求다 고 金宇濟氏 夫人 朴氏가 演說기를 우리 나라 람은 一目과 一手와 一足으로  모양이니 女子를 敎育야 他國과 갓치 同等權으로 그 男便을 贊助면 完全 人과 갓트미라고 얏고 金鳳一氏 夫人 許氏가 演說기를 여러 百年深鎖 閨門을 열고 명 會席에 나오니 減傷和氣던 마음이 爽快기 測量업오며 女子敎育이 必要 거슨 男子敎育에 比바가 아니라 女子가 學問이 잇스면 胎敎붓터 入學前지 母의 敎訓을 밧 거시니 女學校가 단 急다 얏고 其外 諸婦人도 多數 演說얏스나 省畧오며 傍聽 內外國人의 演說이 可히 開蒙上에 有益 千萬言은 不得盡記라 如此盛擧 觀者 聽者로 感發興起오믈 不勝와 玆에 仰佈다 얏더라
기사; 사회
867
Some months ago the Police Department captured three leaders of highwaymen
Some months ago the Police Department captured three leaders of highwaymen outside the Westgate, while they were robbing a trader on the street, and turned them over to the Seoul court for trial and punishment. The court released them a few days ago without a trial. This news reached the Police Department and the officials became very indignant over the irregular action of the Seoul court. The police authorities rearrested the released thieves and made an investigation. They found that these robbers had a strong pull with certain parties in Seoul and through their influence that the Court had to release them. The police authorities intend to punish them in spite of the action of the court
정치; 기사
697
THE THEATRE FIRE IN MEXICO
Mexico, Feb. 15th… Between 250 and 400 persons were burned to death and many injured in a fire which destroyed the Flores theatre in the city of Acapulco last night. The news of the disaster reached the capital this afternoon, telegraphic communication having been interrupted last night and to-day, owing to the fact that the telegraph office adjoining the theatre was burned and all wires put out of commission.The Floras theatre was a wooden structure, and last night over 1,000 people crowded into it to witness a special performance given’in honour of Governor Flores, of the State of Guerrero, who was visiting the city at the time. One of the numbers of the programme consisted of a series of moving pictures. While the operator was exhibiting these a film eaught fire and the blaze was quickly communicated to some booking which had been used for decoration purposes.In an incredibly short time the flames spread to all parts of the structure. There were but three narrow exits,and the panicstricken audience rushed to them, many falling to be crushed fo death their bodies choking the way of escape to others. The screams of those imprisoned were terrific, owing to the rapidity with which the fire spread and its intense heat. It was impossible to attempt rescue work and those imprisoned were literally roasted alive, as the fire burned with little smoke and few were suffocated.The efforts of the fire department were confined to attempting to save the adjoining buildings and they succeeded so that the property loss was small. The telegraph office, post-office and Custom-house were damaged, but all of the Government records and registered mail was saved.To-day pitiable scenes of grief are being enacted on the streets of the little west coast port. Men, women, and children are wandering from place to place hunting for relatives or friends. Many of the dead are from the first families of the State, the affair at the theatre being a social event of considerable importance, and calling out the wealthiest and oldest families for miles around. In some instances whole families were wiped out of existence.The Municipal athorities to-day caused large trenches to be dug, and into these the remains of the dead were laid. According to telegrams received from there, recognition of the dead has been an impossibility, owing to the fact that bodies were burned in most cases to a crisp. Telegrams sent to the American Consul at Acapulco by the Associated Press asking for the names of Americans dead as a result of the catastrophe have as yet not been replied to.Acapulco is on the west coast of the State of Guorrero, and is one of the three important ports of the Pacific coast of Mexico
정치; 기사
2,703
不問可知
浿西來函을 據則 其全文이 如左니我大韓岌業之狀은 胡可忍言哉리오만은 十三道中最不幸者 平안南道가 是也 觀察使朴重陽씨 性質이 異常야 到任之初에 對衆而言曰本觀察事務 全爲外人交涉而來此 則奚暇에 民訟을 聽理乎아 如有訟民이여든 理直者抑之落科고 理曲者使之得訟 則自然息頰矣리니 息訟之計 莫如此計라 든니 有寃之民이 自遠郡셔 裹足來訴則無非果如所言야 曲者爲直고 直者爲曲하여 呼哭而歸者多며 與日人으로 每日相交에 多飮賭技하야 朴重陽氏 半日에 日本麥酒四十甁을 能飮無餘고 日人은 三拾八甁을 僅飮여시니 飮酒巨量은 朴重陽씨라 말고 李太白씨다 謂할지오 每招倡優妓生等야 逸蕩時의 缶皷策를 親執야 長短을 如倡優善調며 六宇이 四巨里랄 高低和唱면셔 男兒의 行樂은 莫過於此라 며 且船遊時의 登船則櫓尾를 執掉行船며 欵乃聲을 先唱니 曲調가 船人中第一이라 平壞外川坊三里所在贍학庫養士屯田을 日人의게 捧價一萬五百圓야 一千圓은 潛食고 九千五百圜은 初焉各학校의 付屬矣러니 不此之爲고 憑藉宣化堂事務室修理와 警務廳監獄署新建費四千圓添入야 假量一千圓役費所入則二千圓으로 加錄야 盡用無餘여시니 泉目所賭에 惟惟를 難信이오 陰今月二十五日은 卽 太皇帝陛下聖誕日也라 自官으로 雖無知委於人民等處이나 㴠洽之誠으로 滿城人民이 國旗를 家家高揚고 敬祝萬歲呼에 各學校敎師들도 學徒를 率고 精正齊齊히 委往觀察道야 欲爲敬祝矣러니 觀察使朴重陽氏 事務室에 跨坐엿다가 각학徒에 入來을 見고 敬祝은 何敬祝고 하면셔 稱病不接여시니 臣民道理全蔑이오 壑欲은 挈長啄而垂地探食타가 狗糞石子不分고 軟强을 皆食니 食性은 盲豚이라 謂할지라 卑悖行爲 我國五百餘年의 不聞不見初觀察使라 노라
사회; 기사
811
敍任及辭令
●敍任及辭令陞正三品 六品 李容彬 仝 李圭容 仝 金亨湜 仝 金起範 仝 權台淵 仝 崔炯健 仝 鄭基鉉 以上光武六年十月九日任陸軍步兵正領 從二品 金昇圭 ○中樞院議官 鄭煥樞 仝 權泰昊 仝 李昞稙 仝 趙德元 仝 朴庸和 仝 黃元 依願免本官 ○六品 尹瀅錫 九品 金永碩 仝 裴炳旭 仝 車得圭 仝 崔命駿 仝 金鎭孝 任中樞院議官敍奏任官六等 以上三月二十日禮式院文書課長 金圭鎭 管理署主事 吳承周 仝 鄭載喜 仝 崔泰煕 仝 李勝會 仝 金演集 仝 崔秉俊 中樞院議官 劉埈 仝 安鵬遠 仝 閔復鎬 仝 金壯煕 仝 金昌泰 仝 權錫注 依願免本官 ○禮式院參理官 李弼均 任禮式院文書課長敍奏任官三等 ○任禮式院參理官敍奏任官三等 正三品 金圭鎭 ○金潤相 文翼臣 黃致雲 趙聖允 鄭衡坤 延圭復 任管理署主事敍判任官八等 九品 張基夏 仝 安仁植 仝 李起周 仝 朴聖贊 仝 李秉燮 仝 鄭泰源 任中樞院議官敍奏任官六等 ○九品 許均 任親衛第一聯隊第二大隊陸軍軍醫補敍判任官六等 以上三月二十一日解署理禮式院長事務 農商工部大臣 閔種默 ○解署理禮式院副長事務 鐵道院監督 崔榮夏 ○通信司電話課主事 柳昆 仝 車載鶴 仝 徐瓚淳 仝 沈軒澤 仝 尹悳圭 仝 趙鏞洙 仝 朴然浩 仝 孫琪澤 仝 朴勉浩 仝 崔震陽 仝 朴衡植 仝 安奎洙 仝 車載晟 仝 蔡秉默 同 李弼柱 同 崔翰紬 濬源殿參奉 禹鍾林 東明王陵參奉 林元則 依願免本官 ○任濬源殿參奉敍判任官八等 金仲烈 ○任東明王陵參奉敍判任官八等 鄭東玄 以上三月二十二日
정치; 기사
680
官廳事項
○官廳事項處務通則第一條 本則은 宮內府所屬各官廳에 適用이라 △第二條 各官廳主務官은 其事務에 對야 其責을 各任이라 但 事務가 二官廳以上에 關涉야 主任이 分明치 못 時 宮內大臣이 主任을 定이라 △第三條 各官廳事務가 各府部院廳及地方官廳에 關涉 時 皆宮內大臣의 名義로 照會 或 訓令고 各官廳에셔 自行辦理을 不得이라 但 照會 或 訓令 事件의 催促及施行節次 等에 關 細件은 便宜上各官廳主務官의 名義로 其官職階級을 隨야 照會往復을 得이라 △第四條 各官廳의 名義로 到來 公文書 皆宮內協辨에게 提出야 配付를 受 後에 各自掌理되 其審議立案件도 分課規程에 定 바를 依야 起案 後 課員及該官廳主務官이 捺章야 協辦及大臣에게 提呈處辦이라 但 禮式院掌禮卿은 會計에 關 事를 除 外에 禮樂及諸般 祭祀宴儀에 關야 緊急 境遇에 裁可심을 經야 先行 後 大臣에게 報告을 得이라 △第五條 經理院卿은 左開事項을 除 外에 職務를 處理에 當야 緊急 境遇에 自行辦理고 且地方官에게 直訓을 得이라 但此境遇에도 處理 後 大臣에게 事由를 必報이라 一 所管土地의 原形을 變며 又其保管轉換에 關 事 二 所管不動産의 所有權異動에 關 事 三 稅額增減及免除에 關 事 四 莊園에 關 爭議를 判決 事 五 森林伐採에 關 事 六 鑛物採掘採取의 認許 或 封廢에 關 事 七 水蔘의 買入價額을 定며 又製蔘放賣에 關 事 八 蔘政에 關 規則改廢에 關 事 九 新事業經紀 等에 關 事 十 各種收入金의 處理에 關 事 △第六條 各官廳主務官은 所管事務에 關야 其繁閑을 計야 所屬官員에게 職務分擔을 命게 得이라 但 本條境遇에 其命 時時로 大臣에게 報明이라 [未完]
기사; 정치
853
叙任及辭令
官 報○叙任及辭令 命臨時署理赤十字社総裁事務 內部大臣李址鎔 十月二十五日觧鎭衛步兵第六大隊特務正校 金信鎬△權成駿 宋秉觀 觧鎭衛歩兵第七大隊特務正校 十月三十日朴恒魯 李啓浩 洪學均 任度支部主事叙判任官 十月三十一日前主事羅基鼎 仝金泰植 仝李在弘任京畿觀察道主事叙判任官八級△前主事徐丙韶 仝池喜烈 仝李容瓚任忠淸南道觀察道主事叙判任官八級△前主事金承源 仝朴敏夏 仝崔萬達 仝朴應柱 任慶尙北道觀察道主事叙判任官八級△前主事金復圭 仝兪擎淳 仝崔源英 仝崔大林 任慶尙南道觀察道主事叙判任官八級△前主事朴永根 仝柳翼煥 仝柳泰英仝朴定燁 任全羅北道觀察道主事叙判任官八級△前主事朴箕錫 仝金寛善 仝李元鶴 仝金錫燁 任平安南道觀察道主事叙判任官八級△前主事李東根 仝李宜春 仝丁元燮 任江原道觀察道主事叙判任官八級△前主事朴永奎 仝高永昊 仝田秉稷 仝洪鍾九 任咸鏡北道觀察道主事叙判任官八級△前主事李圭東 仝朴勝玉仝鄭寅鎬 任東萊府主事叙判任官八級△任東萊府主事叙判任官九級 朴圭錫△前主事金瑞圭 仝金炳哲 任昌原府主事叙判任官八級△任昌原府主事叙判任官九級 金稷煥△前主事金演夏 仝李勉承 任沃溝府主事叙判任官八級△任沃溝府主事叙判任官九級 宋景煜△前主事具敎胄 仝宋元燮 仝朴炳吉 任務安府主事叙判任官八級△任禮山郡主事叙判任官八級 九品李哲求△任扶安郡主事叙判任官九級 辛棟錫△任始興郡主事叙判任官八級 九品李承禹△任文川郡主事叙判任官八級 趙寛衡△任咸平郡主事叙判任官八級 李景相△任郭山郡主事叙判任官八級 朴昌根△任華川郡主事叙判任官九級 沈宜道△任豐德郡主事叙判任官八級 九品李斗稙△任扶餘郡主事叙判任官八級韓聖爀△任黃澗郡主事叙判任官九級李根馨△日咸從郡主事叙判任官八級郭逢學△任瑞興郡主事叙判任官八級文禎淳△任寧邊郡主事叙判任官九級明濟泰△任陰城郡主事叙判任官九級南宮縸△任靑松郡主事叙判任官八級沈宜植△任平海郡主事叙判任官八級九品徐轍奎△任定山郡主事叙判任官八級 前議官崔元在△任鉄山郡主事叙判任官八級 前議官金之龍△任懷德郡主事叙判任官九級 宋瑗用△任鎭南郡主事叙判任官八級 前議官金柄鎬△任寳城郡主事叙判任官九級李敎仁△任玄風郡主事叙判任官九級郭胄坤△任熙川郡主事叙判任官九級梁燦龜△任喬桐郡主事叙判任官九級金秉瑾△任延豐郡主事叙判任官八級九品姜在鼎△任殷山郡主事叙判任官八級金圭錫△任温陽郡主事叙判任官八級 鄭奭好△任河陽郡主事叙判任官八級 都秉洪△任河東郡主事叙判任官九級 金秉斗△任興海郡主事叙判任官八級 崔昌錫△任昆陽郡主事叙判任官八級 李光種△任蔚珍郡主事叙判任官九級 張秉厦△任祥原郡主事叙判任官八級 朴麟懗△任中和郡主事叙判任官八級 金 鋼△任大興郡主事叙判任官八級 李起完△任成川郡主事叙判任官八級 李庭修△任咸興郡主事叙判任官八級 柳承海△任慶州郡主事叙判任八級 前主事金翰殷△任通津郡主事叙判任官九級朴商玄 以上十月二十九日始興郡守金漢睦 任京畿觀察道叅書官叙奏任官四等△靑山郡守宋熙完任忠淸北道觀察道叅書官叙奏任官四等△前警務官崔麟溶 任忠淸南道觀察道叅書官叙奏任官四等△農商工部主事尹昌鉉 任全羅北道觀察道叅書官叙奏任官四等△突山郡守馬駿榮任全羅南道觀察道叅書官叙奏任官四等△玄風郡守白南埈 任慶尙北道觀察道叅書官叙奏任官四等△咸陽郡守朴晶奎 任慶尙南道觀察道叅書官叙奏任官四等△任黃海道觀察道叅書官叙奏任官四等 正三品朴羲老△前警務官張孝根 任平安北道觀察道叅書官叙奏任官四等△任平安南道觀察道叅書官叙奏任官四等△任江原道觀察道叅書官叙奏任官四等 華川郡守鄭海運△任咸鏡北道觀察道叅書官叙奏任官四等 六品柳學根△任咸鏡南道觀察道叅書官叙奏任官四等 六品朴從龍 以上十月三十日
정치; 기사
1,679
閔氏送李氏証據
●閔氏送李氏証據冶洞 李益采 龍山 閔泳喆 兩氏가 互相間에 以山訟事로 平漢兩裁에 起訟은 已揭前報어니와 日昨에 平理院에셔 裁判얏다 說을 漏聞 즉 兩隻對質之場에 其所有權을 不可區別이라 該院에셔 公決기 爲야 兩隻이 各其 証據人을 率來라  즉 李氏가 直往龍山야 自家墓直孫哥에게 言되 汝가 多年守護吾山얏스니 願爲保證人노라  孫哥가 哀乞기를 若爲李宅直言이면 小人은 不可住生於閔宅洞內矣니 所以로 不可保證이라 거 李氏가 勢無奈何야 入來矣러니 閔氏邊으로 龍山洞民 八人이 來待于該院얏 李氏家墓直孫哥가 亦參지라 一一質問 즉 皆曰 閔山이라 더니 及其孫哥取招之地에 李氏가 向孫哥質問기를 汝非吾家墓直乎아 曰 然다 又問曰 汝가 昨日에 固辭爲吾保証이러니 今胡爲閔氏保證耶아 曰 閔氏所使也로라 又問曰 汝之所耕食田土가 是誰家之田고 曰 閔氏之田이니이다 又問曰 汝 有何厚德於吾家야 不食分錢粒米고 幾十年을 空然守護吾山耶아 孫哥가 默無一言이어 又問曰 昨年에 汝가 訪我請囑기 日本人이 以高價로 願買該田니 許之如何오 얏스니 若是閔氏之田則 何不請於閔而問於李耶아 孫哥가 只是◈呿而已라 李氏가 辨明기를 此田은 卽閔氏所謂 自家局內所在之物인 以此証據에 可以知誰直誰屈이라 니 法官이 辦決되 裁判上証據가 豈有如此明白乎아 야 閔氏가 竟歸落科얏다더라
사회; 기사
647
敍任及辭令
●敍任及辭令陞正三品 陸軍正尉 趙性勳 陸軍副尉 嚴柱臣 以上七月九日度支部協辦 李容翊 中樞院議官 金重煥 鉄道院監督 閔泳璇 命地契衙門副總裁 ○中樞院議官 姜信齊 仝 朴珽煥 仝 全基坤 仝 鄭寬好 仝 閔善勳 仝 金樞奎 仝 尹啓煥 依願免本官 ○正三品 柳炯羲 六品 朴基元 仝 朱學信 仝 鄭澣 九品 李昌岐 仝 車濟輘 仝 李龍昇 任中樞院議官敍奏任官六等 以上十一月七日解兼任惠民院總裁 表勳院副總裁 閔丙奭 ○命兼任惠民院總裁 度支部大臣 金奎弘 ○侍從院侍從 徐相懋 通信司電話課主事 朱壽榮 仝 崔命龜 仝 趙亨爀 仝 韓復維 仝 金然鶴 仝 郭承坤 仝 文壽龍 仝 劉錫桓 仝 林魯豐 淑陵參奉 金夏鼎 和陵參奉 金炳璿 宣陵參奉 金宓圭 順陵參奉 南廷七 靖陵參奉 任百璿 孝陵參奉 閔丙益 康陵參奉 金珽鎭 章陵參奉 洪範基 長陵參奉 南星煕 崇陵參奉 洪在衡 綏陵參奉 宋在慶 肇慶廟參奉 沈宜善 徽慶園守奉官 徐學輔 軍部主事 李丙夏 務安監理署主事 金學經 忠淸南道觀察府主事 吳壽益 仝 金洛忠 咸鏡北道觀察府主事 沈璇 依願免本官 ○任侍從院侍從敍奏任官三等 正三品 李懋榮 ○英親王府典衛 李世永 外部主事 李源鎔 命御眞圖寫都監郞廳 ○任宮內府水輪課主事敍判任官八等 魏重爀 ○任淑陵參奉敍判任官八等 李圭紳 ○任和陵參奉敍判任官八等 尹致儉 ○任宣陵參奉敍判任官八等 李相世 ○任順陵參奉敍判任官八等 李萬均 ○任靖陵參奉敍判任官八等 曹秉瑨 ○任孝陵參奉敍判任官八等 李東珪 ○任康陵參奉敍判任官八等 九品 李彦鐘 ○任章陵參奉敍判任官八等 九品 李翌 ○任長陵參奉敍判任官八等 朴定圭 ○任崇陵參奉敍判任官八等 九品 鄭宅朝 ○任綏陵參奉敍判任官八等 睿陵參奉 李忠鎔 ○任睿陵參奉敍判任官八等 弘陵參奉 金商冕 ○任弘陵參奉敍判任官八等 顯陵參奉 尹濬求 ○任顯陵參奉敍判任官八等 九品 宋在慶 ○任肇慶廟參奉敍判任官八等 九品 柳寬鉉 ○任徽慶園守奉官敍判任官八等 沈能晉 ○命慶尙北道金礦委員 鄭宅昇 ○任軍部主事敍判任官六等 李容冕 ○鄭泰源 權中集 任忠淸南道觀察府主事敍判任官七等 ○任咸鏡北道觀察府主事敍判任官七等 禹顯鼎 ○任務安監理署主事敍判任官六等 李春燮 以上十一月八日內部主事 吳學根 仝 鄭雲穆 仝 朴元煕 軍部主事 李容冕 依願免本官 ○李台永 尹明燮 柳經文 任內部主事敍判任官六等 ○任軍部主事敍判任官六等 韓永源 以上十一月九日
기사; 정치
1,055
講聞千里
⊙(講聞千里)平安南道三和府居 韓亨鎭氏가 本社에 편지 하얏 內開에 數年前에 甑山郡守 金仁植氏가 學部訓飭을 依하야 到任卽日에 私立學校를 設立할 意로 一郡儒論을 博採하야 本郡明倫堂을 重修하고 本郡望士 金益燮으로 校長을 擇任하고 邑村英才를 收聚敎育할 國漢文讀書作文하기를 晝夜不撤하니 此說이 遠近에 傳播하야 有志한 君子들이 欽仰不已하던 次에 內部版籍局長 玄檃氏와 學部敎員 玄采氏가 時務書冊 三十八卷을 下送勸奬하니 自此로 尤極勤課하야 不過三年에 學徒의 開明함이 西道에 有名한지라 昨年春에 新郡守 李台稙氏가 到任以後에 其學業에 勤實함을 見하고 日往聽講에 實心勸賞하니 講聲千里에 學部에셔 聞하시고 其志를 嘉尙히 넉이어 該郡學校長 金益燮으로 副敎員을 任差하고 公立小學校를 特立하야 每月에 經費 銀 三十元式을 支給하셔 學資에 窘絀하미 無하니 一郡父老가 惠澤을 感祝하야 踴躍이 無比할 더러 其於 風動鄰郡에 聽聞者孰不欽贊이리오 以若蠢愚之飽聞으로 枚擧敢達하오니 自貴社로 新聞紙에 布示하오면 其於 勸奬에 贊揚이될 더러 他日 國家需用之材 甑山郡學徒中에셔 優等이 될 듯하다고 하엿더라
사회; 기사
541
南大門停車場構內奉迎節次
雜報●南大門停車場構內奉迎節次第一 南大門停車場奉迎者 左의 資格이 有 者에 限一 韓日親任官 一 外國領事 一 貴衆兩院議員 一 民長民會議長及韓日商業會議所會頭 一 從六位勳六等以上 一 各宗派代表者第二 構內奉迎者 大禮服과 又相當 制服과 又燕尾服의 高帽를 着用第三構內奉迎者 左와 如히 通心을 得 一 貨物取扱所前에 奉迎場入口로 入야 指定 位置에 就 但 其位置 標札을 立야 此를 示 一 奉迎場入口에 警察官及鉄道員을 配置얏스니 制服을 着用치 아니 構內奉迎者 入口時에 名帖을 差出 一 奉迎者 入口 下車고 其車馬 左方空場에 引入 當日午後三時지 奉迎場에 入第四 統監府及所屬官署判任官의 構內奉迎者 向側旅客升降場에 整列 但 制服을 着用고 停車場本屋北側巡査派出所傍으로 入場第五 南大門停車場前廣場及道路에 一切 衆人은 禁 但 道路一部만 通用이 無妨第六 停車場構外에 團軆奉迎者의 位寘 左와 如 但 奉迎團軆 堵列軍隊後方에 整列 一 南大門內南側百間에 京城小學校生徒二次十間에 京城婦人會員各派宗敎會員三次三十間에 通信管理局員四次五間에 東津協會學校生徒 五 南大門北側十間에 漢城市民奉迎會員六次二百間에 韓國學校生徒 七 理事廳前에 廳員及家族各國領事官員及家族 八 京城郵便局前에 該局員及家族 九 京城小學校運動場에 赤十字社員幼穉園生徒及夫人會員 十 一般 公衆은 團軆奉迎者의 後方 又 警察官의 指示 場所에셔 奉迎 團軆奉迎者의 位寘 標札을 立야 此를 示第七 奉送도 奉迎時와 同 一 搆內奉迎者入口로셔 左의 奉迎場參列이 左와 如 韓日親任官高等文武官同待遇者及外國領事 一 ★同入口로셔 右奉迎場에 參列 者도 左와 如 貴衆兩院議員從六位勳六等以上正二品以上各宗派代表者民長民會議長日韓商業會議所會頭
사회; 기사
854
劉氏寄函
黃海道海州郡劉훈榮氏의 寄書 全文이 如左니夫國而不可無民이오 民而不可無業일 我大韓도 自四千載以來로 非無士農工商而曾前閉鎖獨居之時에 安於泥舊야 未能効新發達矣러니 一自山梯海航이 交通以後로 觀感이 自然激中야 諸般實業이 比於前日程度에 稍有可觀이나 追及富强各國에 尙千萬里가 遠矣은 況各國인즉 雖瞽聾跛躄이라도 各事其業야 烝烝乎競爭而我韓은 尙今도 拾人會中에 有實業者가 未滿其半則國家安得不貪弱乎아 夫天下之哀가 莫甚於貧而優遊怠惰에 載胥及溺야 頓無一點拯救之道니 此有志之士에 飮泣痛哭야 晝宵硏究者也라噫外國之商戰隊 日日煕徃穰來에 罔不謀其利益야 我韓은 希其餘瀝도 尙未容易니 其故 何哉오 我之天産地餘를 我自暴棄故天下之有慧眼者가 駟手爭赴에 佔其全利니 世之危險干戈가 莫甚於商戰隊며 我韓之至此貨弱을 誰怨誰尤리오 況天道 無私야 栽者培之오 傾者 覆之나니 欲求其挽回之術인댄 在於我之實業力不力如何耳라 貴報 富强之基礎也오 文明之機關也니 外國之新發明 耕作織組工務等諸般實業書籍를 繙譯揭佈시와 使我二千萬同胞로 時時注目고 日日效則야 至於無人不實業之境이 則安知不富强之權輿가 在於此擧乎아
기사; 사회
545
THE INDIAN TROUBLE
Although it would be idle to deny that 2 distinctly uneasy, restless movement prevails in India at the present time, it must not be thought for a moment that there is any chance of a recurrence of the great Indian mutiny. The situation is undoubtedly a grave one ; but it is of a kind that can easily be dealt with by the many coolheaded men who rule (he Empire. the present trouble is vastly different from the one that plunged the country into a terrible war; for whereas the old mutiny was Caused by the violation of caste prejudices and the ignorance of officials, the present storm is merely due to the inflammatory writings of over educated Babus and the soreness that was caused by the partition of Bangal. The belief of the white men in the unsettled portion of India, is that the trouble was first brought about by the committal to goal of the Editor and the Proprietor of the “Punjabi” for attempting to promote feelings of enmity and hatred.A sentence of six months’ rigorous imprisonment was appealed against and, in giving judgment at the Punjab Chief Court, on April 17, Sir William Clark said that had the Court noticed in the defendants any signs of regret at their offence, it would have been pleased to mitigate the sentences. It noticed no suc'h signs, and the only alteration the Court made was to alter the sentences from six months’ rigorous to six months1 simple imprisonment. As the prisoners were being removed the Chief Judge addressed them, remarking that they should go away quietly in the conveyance provided for them, and create no disturbance, and that they would not be handcuffed.According to the Indian papers, this aroused the feelings of the natives and violent assaults were made upon many Europeans during the same day. In the evening a mass meeting was held in the City at which speeches of a grossly improper and seditious nature were made and later, a procession was formed, but the police prevented its entering the Civil Station and finally broke it up altogether.The next morning, the storm broke afresh. More meetings were held and violent speeches delivered. The vernacular press lashed itself into a furious rage against the English and ◈ upon the native to rise and prove himself a man. Gradually the discontent grew and the native papers in adjoining states joined in the fray. The native, who after all, is as simple as a child began to believe that there was truth and logic in what the papers said, and for a time the situation looked threatening. The authorities, however, were alive to what was going on and rapidly moved bodies of troops to the disaffected quarters. It had its effect, for the latest news states that the presence of the soldiers has had a salutary result and that the disturbances have practically ceased. Those who talk glibly of another mu liny should remember that England is in an infinitely better condition to quell one now than she was in the past. Besides this, the Indian Native Army is loyal to the core. It has fought side by side with the British soldier and has realised that justice and lair, play are always meted out to it* It is not the native soldier who is making trouble: it is only the civilian, pushed along by agitators and over educated natives. So long as the Army remains loyal一and there is not the slightest sign of any discontent一another mutiny is impossible
기사; 정치
3,359
博川舊津博문學校학徒가 全國同胞의게 敬告
最愛同業硏友諸兄이여 身雖居각方이 心神은 時有交通이라 本兒 本來학疎才拙야 淺見薄識니 敢對諸兄而猥何卓言乎잇가 然나 至於義理二字야 必無推讓일 是以冒拙敢告노니 今日國孝根基될者誰也오世皆謂吾徒靑年이라니 誠哉是言이여 大哉라 重任이여 吾徒靑年兩肩에 擔負로다 以何心法으로 無缺成就也오 實在於團合力이로다團合力은 안在오 惟在학문敎育而已오 別無法이로다 幸甚幸甚今日吾儕之所학이 前日無效虛문이아니오 有力實地的新학이로다愛友愛友여 擧顔顧察時局니 時危局難토다 吁라 三千里疆土 太平洋波濤中에셔 浮沈고 二千萬生靈은 暖水釜中에셔 号泣니 思思膺塞고 言言落而已라惟恐吾徒 초량弱性이라 當此危險之時局야 身戰齒激於難堪而營榮不免半塗로다愛友愛友여 古代以色列民을 拯救던 摩西가 雖在於寃讐之手中이나 不廢學문이오 合衆國을 自由獨立케던 華盛頓은 雖在於英吉利縷絏之中이나 尙有三絶之勤니 抑同諸시들이 安樂之학歟아 危險中이오 壯夫之학歟아 幼齡時라 彼 何人이며 吾 何人也오 無可奈何라지말고 勉進則有可如何로다愛友愛友여 身甞不爲勇士됨을 勿歎오 吾學이오 報寃謀計昏迷을 勿憂오 吾학이오 抵敵兵器不備을 勿思시오 吾이라 劣愚之言을 不信커던 伹思淸日競爭之情況라 淸國彊土가 不大於日本인가 人口가 不少於日本인가 武器가 不及於日本인가 疆土人口武器 東佯이 莫能當이로되 但無實效학문敎鍊之所致로다愛友愛友여 徒好嬉戱而勿思고 勉力勤學成就야 韓國에도 摩西, 華盛頓, 을 幻成야 已失國權回復고 國家基礎鞏固야 獨立安康永亨하고 東洋平和主張셰 愛友愛友여拾四歲兒의 리炳彩
사회; 기사
747
勅令
○勅令朕이 宮內官의 職에 在거나 又 在얏든 者 文官으로 任用 境遇에 關 件을 裁可야 玆에 頒布케 노라隆煕三年五月三十一日勅令第六十二號宮內官의 職에 在거 又 在얏든 者 文官으로 任用 境遇에 在야 文官轉任의 例 又 文官再任의 規定을 準用고 尙히 其在職年數 通筭홈○朕이 南西巡幸紀念章制定의 件을 裁可야 玆에 頒布케 노라隆煕三年六月一日勅令第六十三號第一條 南西巡幸紀念章은 銀製로 홈第二條 紀念章은 隆煕三年一二月中 巡幸에 關 皇族과 判任官以上者及公吏 又 重要 奉迎員에게 此 頒賜홈紀念章은 前項巡幸에 關 判任官以上의 日本文武官과 又 日本公吏及重要 奉迎員에게 此 授與홈第三條 紀念章의 製式은 左와 如홈章 直徑 一寸一分의 圓形이니 表面에 御旗 刻고 裏面은 「한뎨국대황뎨폐하남셔슌긔념장륭희삼년」 國文 二十字를 橫四行으로 識홈環 圓形으로 홈綬 織地幅一寸二分이니 中央은 軟紅色이오 兩邊은 白色으로 홈紀念章은 綬로 左脇에 佩홈第四條 紀念章은 本人에 限야 終身佩用고 子孫이 此 保存을 許홈紀念章表裏圖及綬圖를 左에 揭홈附則本令은 頒布日로붓터 施行홈
기사; 정치
554
一進公函內閣
雜報●一進公函內閣一進會에셔 內閣에 公函 全文이 如左敬啓者 國家維新의 希望이 固已久矣라 然이나 改革之虛名이 年多야 改革之心이 老而腐敗則 若丁鍼이 不炫이면 病線을 難斷이올지라 現今 革新이 日尋되 墨◈鼻息과 窺管天小와 分據南北야 冰雪論難의 許多片言屑談은 固不足擧論이라 大凡 國家經營 大方政治家의 大活手段과 高出意匠으로 合天理順人事隨時機야 特用醫國方針니 照亮오셔 亟爲准施야 使我大韓으로 開新面目고 速進文明之域케 심을 敬要一 憲法制定頒布고 國會를 設立홈一 地方制度를 改定되 從便合郡고 名稱을 作新야 以無彼此之嫌케 홈一 各府郡鄕校 所有財産을 調査야 學校를 設立홈, 一 各種 稅欵을 劃一歸正야 全屬度支部홈, 一 十三道社還米殘留를 一切 拔本革祛홈, 一 冠婚喪祭의 俗禮를 變通홈, 一 法律은 時宜를 從야 改定홈 一, 國內 淫祠를 一切 革廢야 該家屋土地 樹林을 幷付國有야 以補敎育케 홈, 一 人民의 再嫁法을 許施홈, 一 儈尼의 嫁娶를 許홈, 一 私奴私婢의 已罷令甲을 申行야 嚴加實施홈, 上下人民의 一切 斷髮홈, 一 十三道升斗衡尺을 均一施行케 홈
사회; 기사
542
詔勅
官報○詔勅皇帝若曰 天地之覆載에 萬物이 非有四時之變遷이면 無以遂其生成之功也라 故로 三王이 不同禮고 五帝ㅣ 不同樂니 若窮而不知變이면 則 人之類ㅣ 絶矣리라 我朝列聖이 相承사 重煕累洽사 崇尙文治고 閉關自守야 五百年來에 民樂昇平은 此在五洲未通고 獨保一偶之時也ㅣ러니 今則 梯航이 相望야 天涯ㅣ 咫尺이라 交際之殷과 事物之繁이 非復昔時則 其可墨守舊規而能保性命守國家乎아 況積獘成痼야 文學則 只啜糟粕고 法度則 但 餘皮毛야 有百文具고 無一實事니 如此而其能自立於世界之中乎아 民生之塗炭과 邦命之綴旒亶由是也니 念之及此에 寧不寒心而痛骨乎아 朕於斯時에 適膺禪授之命야 遽臨九五之位니 時局이 板蕩야 瘡痍滿目이라 不有大更張大變通之擧則 決無以拯我民生고 保我邦國일 故以維新二字로 定爲國是야 誓告于宗社고 一心奮勵야 銳圖治安노니 惟爾大小人民은 咸軆朕意고 亦新乃心야 開迷滯誤觧之見며 袪積久固陋之習고 慨念時艱야 丕變風氣야 孜孜汲汲야 惟正德 利用 厚生 三事를 是務면 則 民可以阜오 國可以强이오 而邦命을 可以維新矣리니 倘猶不孚不悟야 戀舊厭新면 則 是冬望霓而夏思冰也ㅣ니 其能免淪胥乎아 玆庸誕誥노니 爾等은 尙恭聽之哉어다 所有應行條目은 開列于左노라一 上下ㅣ 一心에 君臣이 相孚야 開國進取의 大計를 定케 홈一 農桑을 勵며 商工을 奬야 國富를 開發야 立國 基礎를 固鞏케 홈一 紀綱을 振肅며 積弊를 矯救야 中興의 偉業을 昌케 며 開國의 宏謨에 副케 홈一 內政을 改善야 臣民의 幸福을 進케 고 司法制度를 定確야 寃枉이 無케 홈一 人材을 廣求야 適地에 登庸케 홈一 敎育은 華를 捨고 實을 取홈을 務야 國家緊要 需用에 應 道를 開케 홈詔曰 慶會를 遇야 大赦를 降은 有國의 常典이라 朕이 新히 寶位에 登야 百度 維新코져 며 況文明 世運이 大開야 風氣가 一變 今日을 際야 曠前 覃霈가 豈無리오 其自開國以來로 諸凡名在罪籍者의 擧兵犯上 者와 及强盜를 除 外에 罪名을 一幷蕩滌고 現在 流配及已決在囚者도 一切 放釋야 死者로 昭晳 殊恩을 咸被케 고 生者로 放釋 特典을 皆蒙케 야 和氣를 導迎고 維新을 咸與케  事로 亟히 內閣으로 會議擧行야 廣慶 意를 示라隆煕元年十一月十八日
정치; 기사
1,095
部令
法部令第三號辯護士試驗規則 續第九條 試驗志願者 試驗手數料로 五圜을 請願書提呈 時에 納付이 可이라試驗手數料 請願書를 取下거나 又試驗을 不受 時라도 此를 還付치아니이라第十條 시驗은 筆記와 口述의 二種으로 定이라筆記시驗은 民法民事訴訟法刑法刑事訴訟商法行政法國際公法國際私法의 各科目으로 施行이라口述시驗은 民法民事訴訟法刑法刑事訴訟法의 各科目으로 施行이라第十一條 筆記시驗과 口述시驗은 法部에셔 行이라第十二條 筆記시驗에 合格 者ㅣ아니면 口述시驗을 行을 不得이라第十三條 시驗에 關 細則은 每시驗時에 시驗委員이 議定이라第十四條 시驗委員長은 시驗의 成績과 及第者의 姓名을 法部大臣에게 報告이 可이라第十五條 시驗及第者의 姓名은 官報로 公告이라第十六條 시驗及第者에게 시驗委員의 證明을 因야 委員이 及第證書를 授與이라第十七條 시驗請願書及履歷書와 及第証書의 書式은 左와 如이라書式시驗請願書用紙 法部公用紙住地姓名生年月日本人이 辯護士시驗을 受코져와 別紙履歷書及證明書를 添附提呈나이다姓名 印年月日辯護士시驗委員長姓名 閣下未完
정치; 기사
526
班兵舊習
廣州松波江의 船業沙工들은 前日의 該處人民덜이 船隻을 買給하고 食料를 豫給하야 近方行人은 無船貰來往허며 駛工을 對하야 極히 賤待러니 近年의 買給하얏던 船隻도 盡皆破失하고 船人給料도 無 故로 該處平常人民들이 各其營業上으로 船隻을 自備하야 自由生活이라 然이나 舊習이 仍存하야 所謂兩班들과 兵丁官屬輩들이 一向船人을 賤待하며 船貰를 弗給故로 該船業人들은 以充其代하야 遠方行旅와 殘弱인民의게 重貰添收 每인二三十戔船賃을 討索하 弊端이 有하야 來徃行인이 大段不便터다 多幸히 該地耶蘇數인들이 文明 法을 依하야 船業을 開始허고 農部에 認許를 得허여 每人渡江船貰를 一戔五里式로 乘船標를만◈러 江邊의셔 船標를 買持乘渡케지라 公衆人民은 其公平 法을 稱賀허오즉 兩班生員과 兵丁官隷輩들은 一向頑拒하며 反以◈방허더니 日前에 何許兩班이 船主의게 號令하되 兩班의게도 船貰를반야허고 頑拒하지라 船人이 答曰外國人를보면 戰慄不敢시하고 今國殘民을 對하야 如此無理히 壓制賤待하오니 國家形便이 何以善爲乎잇가그만두고가시오즉 其兩班이 反不自省하고 更爲呼令而去曰汝輩가 更不得船業케하리라하얏고 又再昨日에 騎兵중隊參校朱興均이가 率兵丁一名하고 出他還◈에 又如是呼令하고 船人一名을 京域으로 勒力押來하다가 즁路에셔 一夜를 宿하며 酒食價二十餘兩을 討索하고 該船人은 無緣放還하얏다더라
사회; 기사
643
司法
●司法 即接陸軍法院長陸軍副領張華植第七十七号質禀書則內開被告鎭衛第五聯隊第三大隊叅尉李基昌案件由理事公訴審理則供稱矣身往見前侍御洪萬裕則萬裕曰善山居崔翰基言內明春李埈鎔出來吾爲議政黃冕浩爲守令云招致可得財云故旣聞凶說欲爲試問使親知之憲兵名不知申哥果於上年陰曆十一月初五日招致崔翰基於申兵家問之則初焉抵賴故以招証對質爲言則崔乃哀乞書給一萬六千兩於音故受之後使從卒眼同崔哥送于黃冕浩家矣仍爲逃走尋覔不得至十二月初六日始探崔之所在處使憲兵招來押送北署憲兵派駐所▣於音亦爲送之而該署取招時崔乃自服而捧於音事以証據物受之者也若勒捧於音則何以送崔於憲兵派駐所云云事實由被告陳供及平理院公牒明確矣被告旣聞其崔之凶說則何不卽其時發告于法司使之捉崔而私自招致討捧於音一朔之後始乃捉納乎假使▣翰基該於音條即爲出給則李之捉納與否實難預度此一欵不無疑訝然而未騙財擬律也假使崔翰基無亂言之發口而李若搆誣則李難免誣告律崔旣自服定罪照律則李乃發告之人如無發告何以知崔之凶說乎大抵言者心之聲也以崔之亂言究崔之宅心亦一賊類其在人人得以誅之之義不可以李基昌措處之失宜遽加罪責而但臣子義分聞其凶說不即發告掩過一朔之久其於樹風化杜後獘之道亦不可全恕事被告李基昌照律質禀書指令內開此尉官之所爲不可以輕律論更爲嚴査報來事等因承准被告李基昌更爲嚴覈從重擬律照大明律雜犯編不應爲條凡不應得爲而爲之▣理重者杖八十律依陸軍法律第九十九條處笞八十何如▣▣矣依質禀處辦何如之意로 元帥府檢杳局摠長이 上 奏와 奉 旨依奏 四月二十七日
사회; 기사
648
宮廷錄事
官 報●宮廷錄事 詔曰聞議政不日造朝云爲國事萬幸偕來秘書郞還人以安大臣之心秘書院郞李秉韶書 奏臣於陰曆五月初四日子時量敬奉 聖諭馳往傳諭于議政府議政尹容善所住處則以爲昨陳悃愊之忱仰冀 憫恤之澤 特諭早宣 敦召彌勤罔效如臣積罪如臣何以承當臣本以空踈庸品晩通文籍幸遭我 陛下盛際注庇之厚委寄之隆五載以來連授相印門戶華顯同朝鮮比 至恩大德山高海深凡人受恩於人尙欲竭力酬報况臣之終始蒙被未可涯量者乎有可以殫知發慮絲毫裨益之方不擇夷險向上直前即臣之素所蓄積也百凡差除一未甞堅辭而固辭至於中書亦然誠以欲圖尺寸之微思效萬一之報故耳年前叨此任時臣年已過古人休謝之期而不顧譏議修例即膺者亦以此義也今黃扉虛席俾臣日贊機密臣寵光遍軆丹衷自激誦往哲盡瘁之語追古相趣駕之擧而其奈神氣無以接續精思重以迷曚有時少勝頃刻又然欲起還仆欲語旋忘形殼雖存何能作常人樣乎今臣賤齒世所稱大耋之年枯株難津冷燼▣燃有何餘慮餘知負荷此重任裁决此庶務乎臣之視政本重地如鐵防之不可踰越者非出於一毫規避亶由於眞境實際庶有以 俯燭而曲諒之也且臣醜穢之病夜又添亟爲看醫師方還闉第若或少差謹當强疾明將造 朝以冀 生成之澤 王人之陋止相守彌增皇隘伏願先賜召還焉云矣臣旣承仍與偕來之 命故姑爲仍留之意敢 奏答曰知道 以上六月九日宮內部特進官李容元辭職疏 批旨省疏具悉所請依施○宮內府特進官李容直辭職疏 批旨省疏具悉所請依施○宮內府特進官李冕榮辭職疏 批旨省疏具悉所請依施○宮內府特進官洪鍾榮辭職疏批旨省疏具悉所請依施 以上六月七日
기사; 정치
655
북쳥군 셩들이 군부에 졍쟝 기를 본군 군슈가 샤송
원문 : ○ 북쳥군 셩들이 군부에 졍쟝 기를 본군 군슈가 샤송 결쳐  당에 디방 병뎡 박가가 평민의 복으로 송졍에 무란히 녀 들어 군슈의게 핍박히 말을 고 법 아닌걸  거 본 군슈가 그 병뎡을 잡아 들여 례쟝으로 얼를 쳐셔 내보더니 몃 후에 뎨가 스로 거러셔 갑산군 에 갓다가 도라 온지 이십여일후에 병 들어 쥭엇거 본 군슈의게  져 쥭엇다 칭 고 명 병뎡이 일시에 모혀 각기 춍과 칼을 가지고 본군 관문을 려 부시고  슌교의 쳥을 려 부시고 향쳥으로 가셔 향쟝을 잡으려 거 향쟝이 담을 넘어 다낫스니 대져 이 병뎡들이 작년에 대동고를 려 부시고 지금  를 야 군슈가 매양 봉변을 니 명 병뎡 즁에 일명은 임의 삼슈 갑산에 옴겨 잇거니와 그 남져지 삼명은 졀반을 본군에 두고 졀반을 함흥에 두거드면 병뎡의 악이 스로 금지 되겟고 그럿치 아니 즉 본 군슈의게 디방 참령을 겸대 식히던지 참령의게 본 군슈를 겸대 식혀지이라고 엿다더라 번역문 : ○ 북청군 백성들이 군부에 정장 하기를 본군 군수가 사송 결처 하는 마당에 지방대 병정 박가가 평민의 복색으로 송정에 무난히 달려 들어 군수에게 핍박히 말을 하고 법 아닌 걸 행 하거늘 본 군수가 그 병정을 잡아 들여 예장으로 얼개를 쳐서 내보냈더니 몇날 후에 제가 스스로 걸어서 갑산군 땅에 갔다가 돌아 온지 이십여 일 후에 병 들어 죽었거늘 본 군수에게 매 맞아 죽었다 칭 하고 사백 명 병정이 일시에 모여 각기 총과 칼을 가지고 본군 관문을 때려 부수고 또 순교의 청을 때려 부수고 향청으로 가서 향장을 잡으려 하거늘 향장이 담을 너무 달아났으니 대저 이 병정들이 작년에 대동고를 때려 부수고 지금 또 행패를 하여 군수가 매양 봉변을 하니 사백 명 병정 중에 일백 명은 이미 삼수 갑산에 옮겨 있거니와 그 남저지 삼백 명은 절반을 본군에 두고 절반을 함흥에 두거드면 병정의 행악이 스스로 금지 되겠고 그렇지 아니 한즉 본 군수에게 지방대 참령을 겸대 시키던지 참령에게 본 군수를 겸대 시키리라고 하였다더라
기사; 정치
1,024
布達
○布達武官恩給에 關 件을 左갓치 定이라隆煕三年七月三十日布達第九號武官恩給에 關 件第一條 隆煕三年勅令第六十八號施行時에 現役을 離 將校及同相當官은 本則의 定 바를 依야 恩給을 受 者로홈第二條 恩給은 恩表를 依야 終身此를 給홈第三條 恩給의 支給은 現役을 離 翌月로 爲始야 死亡 月로 爲終으로홈第四條 恩給을 受 者가 重罪刑에 處거나 或은 帝國臣民된 分限을 失時 恩給은 剝奪第五條 恩給을 受 者가 再次現役에 就거나 或은 判任官以上의 官職에 任 時 其間恩給의 支給을 停止홈第六條 恩給은 此를 受 事由가 生 後 一個年內에 請求치 아니면 其權利를 拋棄 者로 認識홈第七條 恩給은 讓與거나 或은 擔保의 目的으로 거나 又 此를 管理을 不得홈第八條 恩給의 支給은 親衛府長官이 此를 裁定홈第九條 本則의 施行細則은 親衛府長官이 此를 定홈附則本布達은 頒布日로붓터 此를 施行홈別表副將 四百八十圜 參將 四百二十圜正領 三百六十圜 副領 三百圜參領 二百四十圜 正尉 百八十圜副尉 百四十四圜 參尉 百二十圜
정치; 기사
513
敍任及辭令
●敍任及辭令免兼任濟州牧裁判所判事 濟州前牧使 李庠珪 ○全羅南道前觀察使 趙鍾弼 免兼任全羅南道裁判所判事 ○兼任全羅南道裁判所判事 全羅南道觀察使 尹雄烈 以上一月五日秘書院丞 李源逸 宮內府水輪課主事 金甯鎭 通信司電話課主事 具秉疇 智陵參奉 金錫禧 淑陵參奉 朱秉濬 義陵參奉 李瑨胄 孝陵參奉 孫基洛 章陵參奉 李是鎬 順陵參奉 鄭海重 崇靈殿參奉 金鴻燮 全羅南道觀察府主事 趙鼎元 依願免本官 ○命宮內府特進官敍勅任官二等 景孝殿提調 趙東冕 ○命景孝殿提調敍勅任官三等 正二品 金炳翊 ○任秘書院丞敍奏任官六等 正三品 嚴柱漢 ○任宮內府水輪課主事敍判任官八等 孫亮熏 ○吳在武 申應顥 曹龍默 任通信司電話課主事敍判任官八等 ○任智陵參奉敍判任官八等 許璜 ○任淑陵參奉敍判任官八等 洪和裕 ○任義陵參奉敍判任官八等 韓冕甲 ○任孝陵參奉敍判任官八等 李種大 ○任章陵參奉敍判任官八等 成樂舜 ○任順陵參奉敍判任官八等 李寓 ○任崇靈殿參奉敍判任官八等 九品 白在龍 咸鏡南道觀察府總巡 李喜永 任全羅南道觀察府總巡敍判任官七等 ○任咸鏡南道觀察府總巡敍判任官七等 九品 金秉源 ○任漢城府主事敍判任官六等 金昌圭 ○任全羅南道觀察府主事敍判任官八等 尹應善 以上一月七日
기사; 정치
546
龍山坊會請願
●龍山坊會請願 日本人上田이 麻浦船橋架設에 對야 一般航路에 妨碍가됨으로 輿論이 沸騰은 已報어니와 龍山坊代表會長李址鎔氏가 內部에 請願이 如左大抵一個人의 私利를 爲야 全國共通의 益을 障害며 一條의 便利를 爲야 四方交通의 線을 社絶은 眞▣노 今日國家進運의 計劃이아니라지로다 今에 本坊內麻浦 全國의 中心되 首府의인 喉▣京畿江原忠北各道와 濟物浦其他外洋間大小船隻의 集湊 門戶인 其往來 船隻이 二百乃至七百石의 積載 者不少야 年常滿潮야 江幅의 百間以上될시에 船路狹隘의 感이 有얏고 特히 一朝의 暴風을 遭遇거나 潮水의 增减이 太甚거나 又 結冰前解冰後 時期에 在야 潮勢를 利用며 危害를 謀避기 爲야 艨艨密集 幾▣幾日의 船隻이 各其一分一秒의 遲速을 是爭야 一時로 航進 際에 自然大小船隻의 互相衝突 獘가 種種起來 者인즉 來頭國家의 文明程度 隨야 可及的能力으로 該江을 快廣濶케야 一時에 幾千幾百의 艘가 並行지라도 抵觸의 端이 無을 是圖지어 日者에 日本人上田充이 貴部의 認可을 得야 該浦上에 船橋架設의 工事를 着手니 此 內外國人間의 一大驚動을 惹起 者이로다 現의 該船橋架設에 對야 全國經齊上의 至大 影響이 何如 地에 在을잇가 假使上田充의 設計가 叅酌에 出야 船橋中央에 七間에 一間式或設備다지라도 非常 混雜과 意外의 事變이 逐日頻起야 無數人民의 生命과 財產에 無限 損害 貽은 明白 事實이라 何者오 前에 百隻이 通든 者이면 十隻未滿이 僅▣게되고 又 潮勢을 失야 前에 三十日間에 一航든 者가 四十日或五十日을 要지니 商機을 自失하며 物貨를 致損하 等獘을 致하야 交通에 不迅速과 貿易의 不流通이 繼至하야 內外國民에 生活上에 不測 影響이 有지니 此 但히 本坊人民의 請願만 如是아니라 漢江流域一帶에 住民과 漢城內外의 人民과 次第로 內外商民의 穪冤이 逐▣遝至 者이오며 且該船橋架設의 設計地 即隆熙元年九月分에 李柱國處에셔 一千五百圜으로 買得 麻浦人民의 私有地오 隆熙二年十一月分에 警視廳에셔 許可 渡船組合의 共有權이라 年來其渡船塲에셔 得 収入에 半額으로 同地小學校의 敎育費에 補用하 現狀이온바 該問題의 解决이 持久 境遇에 同地住民이 一朝에 其活路를 失야 渙散 慘狀을 呈지오 從야 敎育事業도 中途에 沮喪지며 次第全國商業界에 普及 損害가 至大터어온즉 此 一個人을 爲야 萬人共通에 益을 障害이며 一條路에 便利를 爲야 四方交通의 線을 社絶이라야도 過言이아니일지니 以此以彼에 該船橋에 架設은 决코 容許바아니기 玆에 舉官請願오니 照亮신 後該船橋架設에 認許 即繳消심을 伏望
기사; 사회
1,289
街談巷說
別報街談巷說◎一友人이 街路上으로 過去하더니 夕陽酒店에셔 數三個 上吐者가 寸短竹을 口吸하고 屛門席에 據地하야 高談峻論으로 互相酬酌하난 言을 來傳하기에 左記하야 諸君子의 一捧腹을 供하노니內部에셔 郡守를 奏本한데 三十三天일넌가 除外도 曠官된 郡 數十窼이 不少한데 何故로 延拖한지 不淨窼이 或有한가西北沿邊騷說듯소 俄人과 淸匪덜이 森林을 斫伐하고 土地를 購買하며 人人마다 塚骨被掘痛忿하고 憂患일 監理와 委員만 派送하면 妥辦지軍部에셔 軍艦事件 兩國交涉紛紛터니 二十萬元出給하고 至今은 無事한지 砲工局長 崔岡氏난 挾雜이라 免官하고 平理院에 押囚터니 一去에 無消息하니 무 緣故又有한지電氣鉄道調査委員文簿貌樣得見한가 電車搭坐逆賊이라 演說하다 被囚한 者 徐丙達氏 一個人은 究竟이 何如한지 電車上에 搭坐客은 如前히 多數라데麥歉이 到底하야 八域이 均同한데 頷顑情狀慘酷하데 今年 農作失手하면 大無之患 어이고 米價가 高騰도 游戲場은 豊年일네各郡에 凶年으로 田土價이 至賤일네 百兩리 上上畓을 折半에도 不願하네 銀行券이 紙錢인가 倭人에게 賣渡하면 十元리 三片일셰 貧民의 田土들은 他國에 盡歸하리
기사; 사회
547
霹靂斃人
韓非子ㅣ 有言되 용力者寡則國貧이라니 此大學所謂生之者也라 夫同一士地也로대 在野民族之手則爲셕田고 在문明民族之手則爲奇貨니 其故何也어 문明人은 能利용資本勞力야 以징殖之로 野만人은 不能也니 自古로 懈侈遊食之民이 多而其國이 未有不貧窶者고 其國이 不窶而未有不쇠敗者어던 況當此競爭劇烈之時代야 能유惰生存者未之有也라 吾聞西人生計學家之言에 曰凡生利之人이 有二種니 一曰直接以生利者니 若農工之類오 二曰間接以生利者니 若商人軍人政治家敎育家之類가 是也라 其生利之力도 亦有二種니 曰體力曰心力이오 復細別爲二면 曰智力曰德力이라니 所謂間接生利者 如官吏軍人之類 以心力而保護者也라 然而英人斯蜜亞丹씨之論은 曰凡品上者에 若官吏師儒醫巫문章之士와 品下者에 若창優주儒鬪力走馬臧獲厮養等은 其用勞力也ㅣ 雖貴賤은 懸殊며 輕重으 異나 皆投其力於不可復之地니 悉與於分利(卽耗財致貧之數者也라余謂斯密씨之此論은 過言也라 在西開明國之政治야 未必誠然이로 試以我國現狀而論之면 遊食耗財之大者가 未有若官吏之甚焉니 斯密氏之言이 適中於我韓人之고病也라 先就耗財之大者而論之컨대 無論大官與小吏와 勞智與勞力고 問其所事何事則不過權利之爭奪也와 勢途之츄附也와 黨派之傾軋也와 유媚之求容也와 貧饕剝割에 營私肥己가 卽官吏之寤寐熱中者也오 究其於國民公益에 絲毫有關係乎則實無有也니 此種習慣이 傳렴性質며 고疾腦髓야 若苟투素에 徒竊國廩되 恬然認爲當然而젼不知恥니噫라 英人邊沁氏ㅣ 嘗言政府者 有害之物也니 然而所以設之者 以小害物로 除大害物而已라고 日人西村茂舜氏 신其義曰政府若害民之事少而能制止他之大害者를 謂之良政府라고 害民之事多而不能制止他之大害者를 謂之惡政府라니 爲官吏者ㅣ 苟能奉其職야 以爲民擇禦其他災害則其間接所生之利가 足以償其直接所費者而有餘故로 문明國之官吏 不得謂之分利니 國民之所謂他炎害者 何오 則水旱癘疫之流行也와 豪强不法之欺凌也오 爭訟之枉屈也와 盜賊之橫恣也와 其尤甚者則外侮之攘奪脅迫에 喪我主權며 失我公産也니 若此者 不能不仰其匡救於政府니 政府ㅣ 能捍衞此等이면 民雖獻其血汗所得之貲産而以贍養之라도 亦不過如營業之有保險야 非可吝可避者어니와若我國官吏 何有於是乎아 民有災而不能恤며 民有枉而不能伸며 餓莩徧道而不能撥며 羣盜滿國不而能禁며 患失偸活에 承伺빈笑야 壓民창産而自固地位니 是 有官吏가 反不如無官吏也라 夫官吏而不能保民禦患이라도 固已害矣온 況以官吏之故로 民害益探며 民産日瘠니 此非遊食耗財之最巨者乎아
사회; 기사
1,158
THE PEOPLE´S PROTEST
THE PEOPLE´S PROTEST.Last Sunday afternoon there was a mass meeting at the Independence Club and amidst much excitement and angry words a communication was passed,addressed to acting Minister of Foreign Affairs, Min Jongmuk demanding him to inform the public of the reason of giving the land on Deer Island to Russia and of the steps he took in making the concession. They claim that the land does not belong to the acting Minister of Foreign Affairs but to the country. The acting Minister of Foreign Affairs alone can not make such deals without consulting the Government, and the people must know the reason and conditions thereof, etc
정치; 기사
638
叙任及辭令
●叙任及辭令 陞正二▣ 從二品閔炯植 ▣ 光武五年七月九日命衞生淸潔所事務委員長 警務使申泰体 五月二十日議政府賛政李載克 命臨時署理法部大臣事務 五月二十四日任議政府贊政叙勅任官一等 從二品洪萬植○秘書院丞朴慶陽 敬陵叅奉沈龜澤 章陵叅奉韓昌愚 開城府分奉常司主事辛泳穆 仝金弼昇 仝張時淳 依願免本官○命宮內府特進日▣勅任官三等 從二品閔衡植○任秘書院丞▣奏任官六等 正三品許 駿○任 敬陵叅奉叙判任官八等 九品金在喆○任 章陵叅奉以判任官八等 長陵▣奉南廷七○任 長陵叅奉叙判任官八等 九品韓昌愚○李元佑 金道淵 任通信司▣話課主事叙判任官八等○任內▣院工業課主事叙判任官八等 金聖培○九品薜觀浩仝朴泰鉉 洪愼觀 任開城府分奉常司主事叙判任官八等 以上五月二十三日成均館博士吳英根 仝李必儀 仝李康秀 依願免本官○金演性 丁佐燮 宋炳益 任成均館博士叙判任官六等○元帥府會計局摠長朴齊純 解臨時署理平理院裁判長事務○議政府賛政臨時署理法部大臣李載克 命臨時署理平理院裁判長事務○任中樞院議官叙勅任官四等軍部砲工局長尙稷鉉 以上五月二十四日
기사; 정치
517
叙任及辭令
○叙任及辭令 軍部軍務局騎兵課員陸軍騎兵叅領朴榮喆 兼補京城衛戍司令部叅謀官△侍衛步兵第一聯際副官陸軍步兵正尉柳哲永 兼補京城衛戍司今部副官 以上十月十四日觧兼任研成學校長 軍部協辦李熙斗 十月十五日觧文官銓考所委員長 中樞院甫贊議李載崑△內部協辦崔錫敏 農商工部農務局長徐丙肅 內部前叅書官韓永福 龍川府尹魚允迪 觧文官銓考所委員△命文官銓考所委員長 議政府叅書官朴慶陽△內部叅書官宋之憲度支部叅書官具羲書 軍部官房長申載永 法部刑事局長金洛憲 學部叅書官鄭 喬 農商工部叅書官金準用命文官銓考所委員 以上十月十七日任主殿院警務官叙奏任官四等 正三品李悳淳△觧經理院文簿厘整委員正三品李承鎔△六品李宗鎬 九品朴勝夏 命經理院文簿厘整委員△依願免本官 崇善殿叅奉金煥斗△任 崇善殿叅奉叙判任官八等 許在中△補軍部軍務局長 陸軍叅將白性基△軍部敎育局編修課員陸軍步兵正尉李容汶 陸軍斫成學校敎官兼敎成隊附陸軍歩兵副尉吳英根 陸軍斫成學校附陸軍步兵正尉鄭暢煥 仝金顯澤 仝李鍾郁 仝白南赫 仝金由鼎 仝李靖漢 仝洪秉壽 仝金興麒 陸軍研成學校附陸軍步兵叅尉趙東星 仝李學瀅 仝李澤求 陸軍幼年學校學徒隊中隊長陸軍步兵正尉韓仁敎 侍衛步兵第一聯隊第一大隊中隊長陸軍步兵正尉嚴柱臣 侍衛步兵第一聯隊第一大隊附陸軍步兵副尉朴勝俊 仝朴奎煥 侍衛步兵第一聯隊第二大隊附陸軍步兵叅尉洪龜杓 鎭衛步兵第六大隊餉官陸軍二等軍司朴永祚 命休職 以上十月十八日
기사; 정치
670
勅令
○勅令 勅令第四十一號各部官制通則 [續]第六條 各部大臣主任事務로 地方官及警務使 監督홈若地方官及警務使의 命令 或 處分이 成規에 違며 公益을 害거나 又或 權限을 犯 者가 有으로 認 時 其命令 或 處分을 停止 或 撤消 事를 得홈第七條 各部大臣은 所部官吏를 統督야 奏任官의 進退 內閣會議를 經야 上奏고 判任官以下 專行홈第八條 各部에 大臣官房을 寘야 左開事務를 掌홈一 機密에 關 事項二 官吏進退身分에 關 事項三 部印及大臣官章管守에 關 事項四 公文書類及成案文書接受發送에 關 事項五 統計報告調製에 關 事項六 公文書類編纂保存에 關 事項七 其他 各官制에 依야 特別히 大臣官房所掌에 屬케  事項第九條 各部에 其事務를 分掌기 爲야 局을 寘니 其分掌事務 各部官制에 定第十條 大臣官房及各局에 分課 各部大臣으로셔 案을 具야 內閣會議에 提出第十一條 各部에 左開職員을 寘次官 局長書記官 書記郞第十二條 各部次官은 一人이니 勅任으로第十三條 次官은 大臣을 佐야 部中事務를 整理며 各局事務를 監督第十四條 各局에 局長은 各一人이라 一等局長은 勅任 或 奏任이며 二三等局長은 奏任이니 各部官制에 定第十五條 局長은 大臣及次官에 命을 承야 其主務를 掌辦고 局中各課事務를 指揮監督니 其奏任事務에 其責을 任第十六條 書記官奏任이니 大臣次官과 所管長官의 命을 承야 大臣官房의 事務와 審議立案을 掌고 且各局課에 事務를 助홈但 軍部에 書記官을 寘치 아니홈第十七條 大臣官房及局中各課에 課長 各一人을 寘야 奏任官 或 判任官으로 充니 課長은 上官의 命을 承야 課務 掌홈第十八條 書記郞은 判任이니 上官의 命을 承야 庶務에 從事홈第十九條 各部奏判任官의 定員은 各部官制에 定홈第二十條 本則에 揭 者外에 各部에 特別 職員을 寘을 要 者 各部官制에 定홈第二十一條 官員으로셔 丁憂 者가 五十日以上을 過 時 官廳事務의 便宜를 由야 本屬長官이 起復行公을 命을 得홈第二十二條 各部大臣은 會議를 經야 預筭定額內에셔 其部下 奏任官以下의 特別 勤勞잇 者 賞與을 得附則第二十三條 本令은 頒布日로붓터 施行홈第二十四條 光武九年 勅令第十三號 各部官制通則은 廢止홈光武十一年六月十九日
정치; 기사
1,071
叙任及辭令
官 報○叙任及辭令 ○六月二日任判事叙奏任官三等 八橋容○六月四日任道書記官叙奏任官二等 澤田乙三○六月六日財務署財務官今井潔 任財務監督局事務官叙奏任官四等△任財務署財務官叙奏任官四等 財務署主事高崎親和△警視廳繙譯官補中村健太郞 任警視廳繙譯官叙奏任官四等○六月五日任郡主事叙判任官四等 全秉淳△任郡主事叙判任官四等 孔成大△任郡主事叙判任官四等 尹衡淳△任郡主事叙判任官四等 九品黃奎熙○六月十日任工業傳習所技手叙判任官五等 梶岡武一依願免本官 臨時棉花栽培所技手三矢榮治郞 五月二十日依願免本官 道主事宮原萬太郞 六月二日統監府通信技師岩橋武之助 電氣工事事務를 囑託(奏任待遇)△免本官郡主事韓鍾秀 右 咸鏡南道觀察使韓南奎의 報告書를 據즉 內開本道裁判所檢事楊孝健의 照會를 接准즉 該員이 人民에게 報償 債金을 不報고 反爲敺打며 橫行酒店에 與人相鬪等因이온바 該員이 行爲不美야 民訴遝至니 不可仍寘라얏기 是以로 免本官 以上六月三日莊陵令沈相起 穆陵叅奉閔忠基 依願免本宮 六月四日郭山郡守李啓奭 右 該員이 本郡半頹 庫舍材瓦를 不遵指飭고 擅自斥賣야 舘宇修葺에 補用이라고 尙且不足額을 今忽請撥니 擧措가 極爲駭歎이기 是以로 譴責에 處 事依願免本官 道主事金世穆△依願免本官 內部技手金宅鉉△免本官 郡主事金鉉牧 右 端川郡守劉文卿의 報告書를 據즉 該員이 叙任後屢飭視務이오되 地方騷擾에 畏怯隱避오니 當此煩劇之時야 不可曠任이라얏기 是以로 免本官免本官 郡主事崔學淵 右 忠淸南道觀察使梁在翼의 報告書를 據즉 該員이 土地家屋을 不由郡守고 擅自証明야 偸券僞契가 至有民訴은 官紀所在에 不可容貸라얏기 是以免本官 以上六月五日免本官 法部主事李宰榮 右 該員이 官規를 違越야 重大 錯誤가 有기로 是以免本官 六月六日公立忠州普通學校專科副訓導申圭錫公立北靑普通學校本科副訓導宋完燮依願免本官 五月二十七日財務署主事金泰榮 仝方春榮 依願免本官 五月三十一日補平壤控訴院書記長 裁判所書記長田中忠見△補大邱控訴院書記長 裁判所書記長諸橋一義△免本職 軍部附陸軍叅將李熙斗△補陸軍武官學校長 陸軍叅將李熙斗△道書記官岡本利平 襄陽郡守李海德 工業傳習所技師越川生太郞 依願免本官 以上六月一日依願免本官 財務署主事邊錫圭 六月二日
기사; 정치
1,100
敍任及辭令
●敍任及辭令補親衞第一聯隊第一大隊附 陸軍步兵副尉 沈允澤 ○補親衞第一聯隊第三大隊附 陸軍步兵副尉 權用學 ○補鎭衞第一聯隊第一大隊附 陸軍步兵參尉 尹錫祐 ○補鎭衞第一聯隊第一大隊餉官 陸軍三等軍司 李錫璡 ○補鎭衞第五聯隊第二大隊餉官 陸軍三等軍司 金承杓 ○補鎭衛第六聯隊第一大隊餉官 陸軍二等軍司 權龜仁 以上八月十三日富平郡守 鄭海魯 咸平郡守 丁大緯 南平郡守 李昌翼 依願免本官 ○任南平郡守敍奏任官六等 前郡守 鄭海魯 ○任富平郡守敍奏任官六等 前郡守 丁大緯 ○任咸平郡守敍奏任官六等 前郡守 李昌翼 以上八月十二日奎章閣直閣任正敎 奉常司主事 李敏英 仝 李渭來 仝 洪承斗 內部主事 沈琥澤 仝 朴仁鳳 仝 崔增 依願免本官 ○弘文館侍讀 吳瀅鐸 仝 李國應 尙衣司主事 金昌鎭 任奉常司主事敍判任官四等 ○任弘文館侍讀敍判任官四等 從三品 沈周澤 ○任弘文館侍讀敍判任官六等 從三品 鄭承鉉 ○任尙衣司主事敍判任官六等 郭昌鉉 ○兪相傅 李昌植 李淸秀 任內部主事敍判任官六等 以上八月十四日中樞院議官 朴珉準 仝 洪鎭孝 仝 韓廷鎬 仝 河允鶴 仝 李穎均 仝 朴庚會 仝 李廷建 依願免本官 ○正三品 金煕景 六品 李鐘成 八品 金永集 九品 朴柱協仝 李完洙 仝 金鵬翰 仝 徐慶勳 任中樞院議官敍奏任官六等 以上八月十四日軍部主事 朴尙浩 德源監理署主事 李昌洙 京畿觀察府主事 金奎鐘 忠淸南道觀察府主事 許柏 仝 吳在哲 依願免本官 ○任軍部主事敍判任官五等 六品 李龍相 任德源監理署主事敍判任官七等 李載升 ○任京畿觀察府主事敍判任官七等 黃泌周 ○白殷基 朴京陽 任忠淸南道觀察府主事敍判任官七等 以上八月十五日
기사; 정치
728
AN AERIAL TORPEDO
As the perfection of the torpedo-boat was followed by the invention of torpedo-boat destroyers, so the adaptation of balloons and airships to military purposes has been followed by a counter murder weapon. A patent has been applied for at the German Patent Office for an “aerial torpedo,” which is being built at the Krupp works at Essen. The torpedo consists of a hollow body, containing a thin cylindrical reservoir, one end of which is attached to the point of the projectile, and the other end to a thin plate screwed into the hollow body. The reservoir is filled with liquid oxygen, and also contains an explosive charge fitted into a cylindrical tube. In the point of the torpedo a hole is bored, widening towards its front end, and a pill of platinum sponge is inserted in the hole. The platinum is ignited by the escape of hydrogen, when the point of the torpedo has pierced the covering or envelope of a balloon or airship, and in its turn sets fire to the explosive cearge. All projectiles for use against balloons manufactured up to the present have simply pierced the balloon covering without exploding its gas contents
정치; 기사
1,131
附耳點頭
⊙(附耳點頭)近日에 電郵兩司官人들이 相逢야 各其 事情을 陳敍 其情況이 眞實야 可히 側耳할 만기 略記노라 一人曰 電郵學徒로 幾許年의 積工으로 卒業을 經야 僅히 主事一窼를 差得얏슴 近日事가 朝夕變改야 所謂 公道 掃地無餘기로 落仕의 期가 目前에 每當함 耳輪의 厚薄만 徒摩 某大臣在任時에 幸免얏스나 大臣者도 吾等과 如야 任遞가 頻數한 今日知面者ㅣ 去고 新任者ㅣ 到면 纍纍한 狀이 乞食狗와 每如야 一部下僚中에 誰가 無勢한가 環視 眼光이 如電한지라 其光所及에 無請願依免이 比比有之거니와 만일 微疵라도 隱見면 罪目을 張大야 卽時免官할 더러 有時乎地方電郵主事가 乘機上來야 久日曠官됨은 少無忌憚고 五六朔式 逗遛면셔 稍勝地의 移差를 圖得 各其 當職의 多少廢務 論責이 少無고도로혀 其人의 勢力輕重만 觀야 移此遷彼에 精神이 怳惚지라 所以로 才者不才者가 一切 解軆야 不知明日에 又在何處니 其精力이 公事에 奚暇리오 所事者 오 大臣과 有勢家에 附耳語와 点頭諾이라 노라 즉 一坐가 半餉을 默然더니 旋히 一笑가 呵呵然더라더라
사회; 기사
548
授日公舘書
[삽화]雜報投日公舘書 [續]◎呂中龍 姜遠馨 禹龍澤 諸氏 等이 日公舘에 投函얏다 全文이 如左니惜乎라 今計不出此고 只求眉睫之細利야 貴國이 自開戰以來로 其蚤夜經營이 必要占領韓國야 以做日本殖民地計料 故로 其對韓行動이 專出於欺詐反覆과 陰譎 詭秘야 利用我愚迷며 慫惥我昏冗며 籠絡我奸細며 奬勵我萎敗야 以充其無厭之饞欲되 一有違拂이면 輒以威嚇而恐喝之며 又以勢力而脅制之야 抑壓束縛을 無所不至니 以故로 今日에 求一件고 明日에 要一約야 無細不求고 求無不獲이라 環海三面에 漁採之利도 盡歸日民고 航行之權도 亦在日人며 甚至不通商口岸之漁基商業도 亦自古有니 我沿海居民之漁業資生者 擧至失業丐乞之境이오 其陸地則 南自釜馬兩港으로 西至龍灣之界히 鉄路電線이 縱橫貫通야 以握大陸上交通之權고 其所經沿道에 必廣占地段야 韓人之田畓 家屋 墳墓 森林을 靡不毀破 鑿掘고 儼成日本之村落庄土호 猶且不足야 三南 兩西曠衍膏沃之土를 稱云買收고 以狙謀譎計로 强占白奪야 據爲己有者ㅣ 以億萬計오 其他 山河市場에 可以殖利營業者 亦必設計騙取야 糚占靡遺니 可憐韓國之民은 擧皆蕩産敗業에 流離渙散야 哀號翻怨며 搥胷踣地니 天乎有知면 豈忍爲斯며 又其敷設時所需役夫 强迫農民에 驅入役地를 如犬羊之鞭扑而凌踏之고 又其雇金은 十不給一야 哀此貧民이 飢疲莫振일 所以 謀避紛紛야 負戴奔竄니 十室九空에 人烟이 蕭瑟고 氣像이 愁慘며 關北一路 偏被兵役之苦야 生息이 幾絶니 全國生靈이 俱被魚肉之慘이라 抑欲使三韓人種으로 將無噍類而澌滅也歟아 此豈人道之所可爲乎며 此猶不足야 許多礦産也 森林也 荒蕪地也를 亦皆 一切 强求며 以至於沿海河川의 航行權利도 必要奪取而占有야 雖至細至微之利益이라도 無一餘存케 니 可謂 吮竭全國之膏血며 剝盡普土之皮膚야 悉充於日人之肚子 然後에 方爲快心者니 然則 此 百千萬韓民은 擧將斷棄産業고 從赤松子而遊가 可乎아 嗚呼라 以上所陳은 但 人民之關係切已로 日夜䘖怨야 裂眦而嘔血者也어니와 若論其政府之關係면 尤極寒心니 迫我奸臣而先奪外交之權야 以杜列强之口고 內而締結群小야 陰藉以勢權고 以之使用於賣國之駔儈야 一從自家之命令케 니 噫彼群小 甘作日本之鷹犬야 以噬憂國之忠良며 不恤壓制之侮辱고 自削邦國之權利니 嗚呼悲夫라 [未完]
사회; 기사
1,085
部令
○部令 法部令第四號 (續) 看守及女監取締職務規程第八條 恒常在監人의 健康狀態에 注 意되 苟或異狀을 認定 時 直時 此 看守長及監獄醫에게 報告이 可홈第九條 在監人이 訴願或은 密告랴  者가 有 時 此 看守長에게 報告이 可홈第十條 檢束上重大 事故가 生거  又 生랴 虞慮가 有 時 其事態에 應야 防制救護及急報의 措置 行이 可홈第十一條 檢束上必要에 基因 諸 般點檢及檢查 細密히 此 行되 若異狀이 有을 認定 時 每度로 看守長에게 報告이 可홈第十二條 在監人을 監獄外로 押送 時 戒具 施야 檢查 經 後特 히 嚴密 注意로 戒護이 可홈第十三條 恆常在監人의 役業을 督勵 며 其科程의 畢了與否及製品의 良 好與否 檢查이 可홈第十四條 女性의 在監人을 戒護은 特히 指揮 境遇에 限홈 第二章 女監取締의 職務第十五條 女監取締 典獄及看守長 의 指揮 承야 女監內의 庶務及戒 護에 從事홈第十六條 看守의 職務第一條第十二 條第十四條 除 外에 其他各條 総히 本職에게도 適用홈 (完)
정치; 기사
568
地方消息一通
●地方消息一通△本月八日에 咸鏡南道豊里에셔 出 日兵이 獐項里西北方에셔 義徒六十名과 交戰얏다고△本月三日에 延安守備隊日兵이 該郡東北方에셔 義徒二名과 交戰얏다고△本月拾日에 日本騎兵이 北靑北方金昌附近에셔 義徒百五十名과 交戰고 同日該地附近에셔 日本騎兵이 義徒百五拾名과 交戰얏다고△本月七日에 果川에 守備隊가 奉化東北方에셔 義徒와 交戰얏다고△本月五日에 慶尙北道泳安守備隊日兵이 奉化東北方에셔 義徒와 交戰얏다고△本月八日에 金浦分遣所日兵이 該地南方에셔 義徒十六名과 交戰얏다고△本月十日에 鎭川分遣所日兵이 該地南本梧柳橋北方에셔 義徒二十五名과 交戰얏다고△本月七日에 洪川分遣所日兵이 該地北方에셔 義徒二十五名과 交戰얏다고△本月十二日에 利川守備隊日兵이 該地西北方에셔 義徒와 交戰얏다고△本月七日에 禮安守備隊日兵이 該地東北方에셔 義徒五十名과 交戰얏다고△本月八日에 知禮守備隊가 永同東南方에셔 義徒五十名과 交戰얏다고△本月十二日에 咸興에셔 出 日兵이 永興北方에셔 義徒二百五十名과 交戰얏다더라
사회; 기사
502
布哇情形 續
此를 觀야도 地廣人稀은 一見可知라 糖農及稻農에 勞動者가 不足으로 各國移民을 勸奬나 東洋人中에 淸人은 美國法律에 禁 바오 韓日兩國人은 無碍徃來되 日本人은 布哇를 經야 美國에 轉徃 者가 夥多으로 各庄主所言에 韓民이 每朔三四百名式移住야도 無妨다 云홈韓民數爻光武六年卽西曆一千九百二年爲始야 光武九年七月一日지 我民의 布哇에 渡航 者가男 六千五百三十六人女 四百七十四人兒童 五百〇九人統計七千五百十九名內原籍을 道別면 地名不記人이 三千一百七十人이오 地名登錄人이 三千三百六十六人內에京畿道 九百〇六人平安道 六百九十六人慶尙道 六百七十七人全◈道 三百三十五人黃海道 二百五十三人咸鏡道 一百九十六人江原道 一百五十五人忠쳥道 一百四十八人以上所陳數爻內에三年間美國에 移住 者가 三百餘人이오 還國者가 近百人이오 死亡者八九人이라 農庄會의 本年七月一日調査를 據면 我民의 夏倭 馬位 臥后 佳倭四島三十餘處農庄에 散在이 多則五六百名少則幾十名計四千九百四十六人이니 各處로 遷轉이 不一고 徃來가 無常야 今日調査가 明日不合니 右陳數爻 一定으로 認◈ 難홈 未完
기사; 사회
531
六品通訓大夫前濬源殿令姜윤煕同十三道儒生等上疑
伏以亂臣賊子販君賣國者從古何限而頑鈍無恥禽獸之不逮者復有甚於賊臣朴齊純李址鎔李根澤李完用權重顯者乎國家存亡視同獘屣一身榮枯認作重器李君父殉社之命所宜顙而外賊之誘脅反爲壓重苟有毫分人心寧容若是淸日之馬關條約日皇之宣戰書皆以 大韓獨立爲第一大義孰不曰保隣之厚也日者伊藤博文之所請五條乃攘奪人國之闔闢手法也外交委託日本則我將無與交隣天下誰復有待我以國者乎公使領事改稱統監理事則莫重威福非我操縱 宗社置之何地生靈屬之誰手 陛下之玉榻將安所適矣彼旣忽地渝盟反義作仇失信於天下失和於我國東洋之禍不在俄人而在於蕭墻之日本也韓雖壤地偏小至若義利相反寧可自守而亡無餘地不顧時日而晷刻苟存則縱橫之徒何往而無其地也蘑以歲月嘗膽觀釁則東洋風雨十分釀凝之餘强弩之末勢魯縞足以捍禦則日本之亡其將指日而約矣然則伊藤博文非但我國之讎敵乃日本之亂賊也蠢彼朴齊純等五賊慮不及此其心自以爲將樹大勳勞於日本韓亡適日則日必德我崇秩之貴萬鍾之富比韓倍蓰則已亡之韓有不足顧乃以迫不得已四字粧撰外面借威於彼俛首書可假手於勒行調印其心所在路人所知也雖然 陛下不允貳相不準所謂約欵決非政府之公案乃僞書之私自予奪朴賊等之大逆無道不考該晩肆請市朝者也中外紳士之交章請誅者推積卷軸而恬弗知退强顔冒進 陛下弗之加誅顧以朴賊兼署貳揆此乃伯鯀之已試者也御押御璽次第見瞞於此賊而矯制 允裁喚假做眞矣以 陛下之明聖何弗慮之及此乎嗚呼內以誅賊外以公辦今乃急務之者而弗宜晷刻暫緩也前侍讀臣姜遠馨之䟽實出公憤而禍弗旋踵被拿警廳忠逆之倒施賞刑何如是相反乎臣等於此失聲痛泣竊以爲天下之事從此而已無可爲者然桑楡之收猶可及是而庶無其悔矣伏願 陛下亟令司敗拿收五賊嚴施三尺之威 特召外使之在舘者于殿前據義公辦聲罪이藤博文之渝盟乖和使之拿還正法繳銷僞書之私自予奪者痛雪神人之憤鞏固萬世之基業焉
사회; 기사
755
London, Nov. 23rd
SPECIAL TELEGRAMS TOTHE INDEPENDENT.London, Nov. 23rd. Great fire has taken place in business quarter of Melbourne and damage done is estimated at fully a million sterling.Dust storm has visited northwest Vietoria and several towns have been wrecked. Owing to the representations made by Russia, Turkish naval reorganization has been postponed indefintely.Russia has presented a note to Turkey demaraling payment of arrears of war indemnity which amounts to a sterling.Tenders have been invited for 29th of November for two and a half million sterling in six months and twelve months, India bills dated 3rd of December in amounts of one, five and ten thousand pounds
정치; 기사
666
英國女皇陛下崩逝
別報英國女皇陛下崩逝英國女皇陛下셔 本月二十二日下午六時半에 崩逝신 電音이 漢城에 駐在 英公舘에 來到얏 該公舘에셔 半旗를 懸고 大韓外部와 各國 公領舘에 訃音을 公牒얏기로 本社에셔도 吊禮를 敬表노라考건 英國皇室은 世界에 最多福으로 稱지라 同女皇陛下의 御名은 빅도리아오 寶號 大弗列顚及愛爾蘭女君主兼膺五印度大后帝시니 西曆千八百十九年五月二十四日에 誕샤 千八百三十八年六月二十八日에 寶位에 登시고 千八百四十年二月十日에 謁寶公爵과 婚禮를 行셧다가 千八百六十一年十二月十四日에 同公爵을 失耦셧고 千九百一年一月二十二日下午六時半에 崩逝셧스니 御極六十二年半이오 壽八十一歲半이시더라同女皇陛下셔 五男三女二十九內外孫을 有시니 第二男皇太子 韋一斯親王이시니 丁抹國公主와 成婚야 一男三女를 生셧고 第一女 德國 부도릭 皇帝와 成婚야 六男一女를 生셧스니 今 德皇이 其嗣男이시고 第三男은 에듼벅 公爵이니 俄國公主와 成婚야 一男三女를 生얏고 第四女 德國公爵과 成婚야 三男一女를 生얏고 第五女 노온 候爵과 成婚얏고 第六男은 普魯士公主와 成婚야 一男二女를 生얏고 第七男은 월 公主와 成婚얏고 第八女 德國公爵과 成婚야 二男二女를 生얏 右二十九內外孫中에셔도 有子生女 者ㅣ 亦多나 此에 省略노라
기사; 사회
630
敍任及辭令
官報七月三日●(敍任及辭令)平安南道觀察府主事 朴麟玉 平安南道觀察府主事 朴箕錫 陞敍判任官五等 以上六月二十日咸鏡南道觀察府主事 金光鉉 咸鏡南道觀察府主事 崔現三 咸鏡北道觀察府主事 全寅俊 咸鏡北道觀察府主事 李求泰咸鏡北道觀察府主事 韓鐘淑 全羅北道觀察府總巡 金昶洙 依願免本官 ○金均燮 韓喆鉉 任咸鏡南道觀察府主事敍判任官八等 ○任咸鏡北道觀察府主事敍判任官六等 六品 李鐘華 ○崔秉極 韓鐸觀 任咸鏡北道觀察府主事敍判任官八等 ○任全羅北道觀察府總巡敍判任官六等 韓五鉉 以上六月二十四日軍部經理局第一課員 一等軍司 安錫煥 軍部經理局第二課員 二等軍司 兪兢煥 免本職 ○任三等監督 參領 成夏永 ○任正尉 副尉 張鳳煥 ○參尉 趙尙錫 參尉 兪致燮 任副尉 ○任參尉 九品 朴莊和 ○補軍部經理局第一課長 三等監督 成夏永 ○補軍部經理局第一課員 二等軍司 兪兢煥 ○補軍部經理局第二課員 一等軍司 安錫煥 ○參尉 金商說 參尉 朴莊和 補北靑地方大隊附 以上六日三十日貴族院卿 尹雄烈 命宮內府特進官敍勅任官三等 ○法部大臣 兪箕煥 命貴族院卿敍勅任官三等 ○中樞院議長 趙秉式 命臨時署理法部大臣事務 以上七月二日
기사; 정치
520
군부에셔 시위 뎨일연 대쟝 셔리 구영죠 씨의게 훈령 기를
◉군부에셔 시위 뎨일연 대쟝 셔리 구영죠씨의게 훈령 기를 본 뎨 일대 뎨 일즁대 죨이 이 륙일에 군부에 번을 들엇 본부 쥬 입직 차례에 들어 오 길에 몬져 문 파슈 병뎡의게 힐난과 욕을보고 들어와 하를불너 문 파슈 병뎡셩명을 물은즉 그하가 힐란고 욕 이 문 파슈 병뎡 보다 나 더야 당쟝 광경이 곳변괴라 니 대져 문 파슈 병뎡이 잡인 금 거슨 진실노 당연 거니와 그날 입직 관인을 무슈히 휘욕 은 군인의 쇼위에 단당 죄를 범 엿고 지어 하야 몸을 근신이 야 다른 병뎡과 다르거 도로혀 판임우의 말노 노형이라 불으고 면 야 능욕이 망유 기극이라 니 만일 고치지 안면 관인 쳐지가 엇지 어렵지 안며 군 쳬면은  쟝 엇지 리요 가히 엄치 슈 업기로 령칙 니 그 문 파슈 병뎡은 별반 증치 고 그하 후일 증습 게 증녀  후에 형지를 니 보라 엿다니 병뎡이 군부 대문에셔 이러  에야 다른 곳에셔 말 안이 여도 가히 알듯 너라
기사; 정치
517
安重根의 公判(六)
●安重根의 公判 (日報照謄) 第六報十日午前九時三十分에 第四回公判을 開고 溝淵檢察官이 論告를 行얏 其大意 如左더라 本問題를 事實論과 法律論으로 區別야 爲先事實을 論터인 先히 被告의 性格을 觀察건 柳東夏 未成年者인 中兼야 侍下의 人으로 政治的思想이 無 者이나 其性質은 頗히 猛悍고 曹道先은 學問이 憮 中兼야 只今지 履歷이 政治的思想을 生치못얏스며 意志 極히 薄弱야 到底獨立經事 人物이아니오 禹德淳은 多小의 學問도 有고 又浦䀋에셔 大東共報의 集金役을 執얏슬아니라 時時로 同社員과 往復을 察컨 被告 新聞을 依야 政治的思想을 有이 明白며 其性質은 實로 難化의 物이오、安重根은 韓國人便으로 善美 性格을 有아니라 其父 相當 財產도 有고 生活도 中流以上으로야 地方名族됨이 無愧며 宗敎 天主敎를 信야 洗禮지 受 者이나 然則安은 其地位上比較的으로 學問이 少며 其性質은 剛直고 其意志 强硬며 且政治思想이 富 其動機 安이 石炭商을 營다가 失敗과 安正根이란 者의 政治演說을 聞이오 其思想의 熱沸은 鄕里를 離 後四方으로 遊浪다가 義兵에 叅加을 因이며 犯罪의 動機로 言건 柳曹兩人은 不足論이오 安及禹에 至야 被告等이 政治思想으로 基因얏다 陳供나 露國官憲의 調查를 據면 私怨을 因이 明白고 犯罪의 决意로 言면 安은 曾前붓터 熟思다가 伊藤이 渡滿다 事를 聞 後에 决定얏고 禹 安에게 被誘 時붓터이▣曹▣柳 犯罪前二日인듯도다(中畧)然則柳曹 犯罪豫備오 禹 幇助者오 安은 現行犯이라고 事實論을 纔畢 時에임의 正午를 當지라 裁判長이 休息을 公布더라
기사; 사회
823
民籍實施諭告文
●民籍實施諭告文民籍法實施에 關야 內部에셔 人民에게 諭告 全文이 如左더라今에 民籍法을 改正發布 趣旨 從來로 戶口調査規則이 有나 其調査方法이 完全치 못 바ㅣ 有야 其目的을 達기 不能 故로 玆에 人民의 身分關係를 法律上的確히 고 同時에 一國人口의 實數를 正確히 知悉 必要가 有에 因야 本法을 制定 바ㅣ니 是以로 其趣旨 徵稅, 國籍, 又 犯罪搜索 等을 爲야 行이 아니오 實로 人民의 身分을 的確히 자고 에 不外 바ㅣ라 政府 此際에 警察官 憲兵 又 面長으로 一般 人民의 戶口調査를 命지니 此調査를 受 者 疑念을 勿抱고 極히 安心고 其事實로 答申야 調査者로 何等의 故障이업시 調査記入케 이 可고 毫末이라도 隱匿 又 虛僞의 答申을 야 犯法의 何爲를 行이 不可며 且一次 本調査를 終了 以上은 民精簿를삼아 各其 所轄警察官署에 備付고 又申告簿를 各面長下에 備置지니 故로 爾後의 身分異動假令, 出生, 死亡, 婚姻 養子 又 移居及其他 異動이 有 時 十日以內에 面長의게 其旨를 申告이 可지라 萬一 其申告를 懈怠히 거나 又 虛僞의 答申을  等事가 有면 法에 照야 處罰을 免치 못에 至지니 人民은 克히 此意를 自覺야 民籍法의 施行을 完全케 을 注意이 可 事라 얏더라
사회; 기사
642
布哇情形 續
韓民景況一 居處 農庄마다 各國移民의 家屋을 定야 一房에 二三人或四五人式居고 有妻子면 別設一家 農庄도 有며 或專給一房 者도 有고 沐浴及薪水 庄主가 供給홈二 衣服 氣候가 溫和으로 厚衣 不要고 單洋服으로 四時에 無碍홈三 飮食 處所를 隨야 移民들이 或別設廚房며 或有妻眷야 米奬菜肉等物을 韓國法으로 調和烹飪야 一箇人所食이 一箇月에 美金五六弗至七八弗假量홈四 事務 糖農은 自播種至刈收에 必要十六朔乃至十八朔時日故로 庄主及雇人이 日曜日及名節外에 休暇가 少無야 每朔二十六日과 每日九箇時 或十箇時間勞動홈五 雇價 一箇月에 美金十八弗(每弗當日貨二元卽韓白貨四元)로 爲率야 勞動日數多少 隨야 加減고 女人兒童에 雇金은 十一弗 或十四弗에 至며 機械間工匠과 鐵匠木手石手車夫等事務 比諸糖農면 等급이 稍高고 雇價도 每朔二十餘弗至三十餘弗을 得나 韓人은 忍耐力과 前進心이 不足야 此等事에 留意者가 姑無홈六 醫藥 大農庄에 病院을 設備고 小農庄에도 藥房이 有야 醫藥을 無價施給되 病院稅로 二十五錢 或十錢式 每人에게 每月收取 農庄도 有홈未完
사회; 기사
534
叙任及辭令
●叙任及辭令命奉常司提調叙勅任官三等 侍請院詹學閔衡植○命侍講院詹事▣勅任官三等 同知敦寧院事趙東完○命同知敦寧院事叙勅任官三等 宮內府特進官閔泳璘○任義州監理署主事叙判任官六等九品李誾珪以上十月十日慶尙北道管下郡守治蹟(續)寧海郡守李喆和 老錬之治吏畏民懷○順興郡守朴珉榮 慈諒爲心闔境安閒綜明視▣兼邑振刷○漆谷郡守劉膺烈 恩造如天憂分此地新譽已聞來績且期○豊基郡守 未差○盈▣郡守李丙瓚 古訓是式初政可觀○龍宮郡守張龍煥 漁陽歧麥古聞其謠合浦還珠今見伊人○河陽郡守尹▣善 政淡於水自▣琴鶴邑小如斗可惜枳鸞○榮川郡守李丙默 邑殘務劇胡不遄▣○▣化郡守赴金寅欽 未赴任○淸河郡守徐相冕 未赴▣○眞▣郡守吳任珪 未赴任○軍威▣守張漢基通敏才噐錬達台▣躳行村里督▣無遺○義興郡守趙秉瑜 聽之輿論俟何來暮○新寧郡守申勝休 日淺○延曰郡守朴珉準 移粟救急▣壇衛生○禮女郡守趙珪凞 未赴任○聞▣郡守金永年 嚴杖息猾竪碑有譽○知禮郡守安璋遠 求治益勤見利且明○咸昌郡守金基洙 氣品貫虹才優▣錦○英陽郡守鄭夏鉉 移粟賑飢一境頌患○興海郡守趙重翊 郡頌葺廨之勞村賴防匪之約○慶山郡守李啓弻屢捐殘廩實出愛民躬檢線道益勉守土○慈仁郡守李寅兢 自以老成倦于事務○比安郡守林秉斗 心切圖治獘局漸甦身先視事潰堰重完○玄風郡守安永重 惠及蝸屋捐俸而濟歛才試牛刀▣講而興學○高靈郡守䍜璇鎬 分米築洑乃其實政恤蔀束濕目是偉規○長署▣守文昌錫惠肉而老者安捐金而學▣勸剖决鄭流門無訟滯摘發似神村絕盜▣慶尙南道管下郡守治蹟晋州郡守李瑢敎 已有金▣舊績니 施此晋陽雄州홈○金海李根洪 曾聞人溫如玉이오 今見門淸似水홈○密陽趙鍾緖旣明練而老成니 信吏畏而民安홈○東萊鄭泳朝 荷此特地分憂야 盍念淵氷垂戒홈○蔚山金佑植 正在年富道遠야 務要先絕利心홈○宜寧金永基 邑獘已至此甚니 矯抺未知其策홈○昌寧孫瑢憲 來暮山水名郡야 非晩桑楡收效홈○昌原權益相 地是海濱遐遠이오 民誦文士雅量홈○居昌▣應▣ 可惜棲遲鸞棘야 不憚薄試牛刀을○河東 未差○陜川李長稙 重離違暫曠務니 民久思賢太守홈○咸安李寅聲 非但地僻事簡이라 賴以雍谷做去홈○咸陽▣晶▣飭已本自謹愼이오 聽訟一出廉明홈○固城李康準 克遵法家儀型이오 兼晉循吏風度홈○梁山安▣禼 ▣原自是近厚이나 閱歷미 惜▣深▣○彥陽李在寅 每念特荷 恩迨야 果是一心圖報○靈山李容鎬 以若平日規模로 有欠案件疎忽○機張嚴信永 聽訟隨事綜詳니 闔境自然安靜○巨濟權軍勳 辦事足徵綜核이나 軆面有欠潔已○草溪李晳▣處官有條有理오 他事實心實惠○昆陽安敬煥 百姓曾誦來暮니 五馬緣何遲回○三嘉金永雲 信有詩禮典型이오 不愧長吏規度○漆原尹永稷 來守桑梓故鄕니 宜有竹馬歡迎○安義閔丙吉 日淺○山淸曹有承 屢典自有聲績이오 一事終嫌蹇裳○丹城鄭▣琦 官政固所願治이나 民情落訟者怨○南海金思澳 初手當此獘局니 勞心宜倍餘人○泗川尹順伯 天姿悃愊▣華이오 臨事▣綽有爲○熊川權錫九 早知百里▣檄이면 恨不十年讀書○鎭海朴兢來 以若初手殘局에 民方拭▣望治○錫南朴逸憲 持身淡恬如菊이오 臨事確有成竹
정치; 기사
1,377
경계 귀쳥 고시와 본회 춍 위원의 회보를 봉쥰 오니
원문 : ○ 경계 귀쳥 고시와 본회 춍 위원의 회보를 봉쥰 오니 아혹이 쟈심 온바 본회에셔 별회를 죠 것이 톄에 흠이 잇다 시니 무 건이 잇스며 회즁에  두 사의 어핍 지존타 심은 그 사이 참으로 이 실샹이 잇스면 스로 당률이 잇슬터이니 엇지 가히  사의 죄로 써 삼 쳔인이 다 츙 이 업다 오릿가 봄 브터 여름 지 허다 공변된 의론과 실샹 잇 일을 것은 더 말아니 여도 곳 민국이 다 아바이요 졍부에셔도 모도 아터이니 츙의 두 글 이것을 미루어도 가히 변별 것이며  특별회를 죠 것과 쇼쳥을 쟝악원으로 옴겨 베픈것은 가 어렵고 일이 민국에 관계 을 즈음 야 첫 텬폐에 상쇼 야 아 졍이 우의 달 게 고 둘 졍부에 편지질 야  일을 편안  놀니게 기를 긔약 엿더니 믄득 오 에 귀 쳥에셔 슌검 몃 명을 파숑 야 길을 막으며 쇼쳥을 에워 고 회원을 핍박 여 치니 졍샹이 위황 여 엇지 줄을 아지 못 와 잠간 무쇼로 옴겻더니  즁셔 경무관 안환을 본회에 보여 거의 젹긔를 니 질문 라 시니 대뎌 잠간 셩 안에 멈으것이 무엇이 민국에 관계가 되며 무엇이 톄에 흠이 되나닛가 귀 쳥에셔 긔어코 모라 내랴 을 자셰히 회답 심을  번역문 : ○ 경계자는 귀청 고시와 본 회 총대 위원의 회보를 봉준 하오니 아혹이 자심 하온 바 본 회에서 별회를 자주 하는 것이 사체에 흠이 있다 하시니 무슨 사건이 있으며 회 중에 한 두 사람의 어핍지존하다 하심은 그 사람이 참으로 이 실상이 있으면 스스로 당률이 있을 터이니 어찌 가히 한 낱 사람의 죄로 써 삼사 천인이 다 충애한 마음이 없다 하오리까 봄 부터 여름 까지 허다한 공변된 의논과 실상 있는 일을 한 것은 더 말씀 아니 하여도 곧 민국이 다 아는 바이요 정부에서도 모두 아는 터이니 충애의 두 글자는 이것을 미루어도 가히 변별 할 것이며 또 특별회를 자주 하는 것과 소청을 장악원으로 옮겨 베푼 것은 때가 어렵고 일이 민국에 관계 함을 즈음 하여 첫째는천폐에 상소 하여 아래 정이우의 달 하게 하고 둘째는 정부에 편지질 하여 때 일을 편안 한데 놀리게 하기를 기약 하였더니 문득 오늘 아침에 귀 청에서 순검 몇 백명을 파송 하여 길을 막으며 소청을 에워 싸고 회원을 핍박 하여 쫓으니 정상이 위황 하여 어찌 할 줄을 알지 못 하여 잠깐 사무소로 옮겼더니 또 중서 경무관 안환을 본 회에 보내어 거취의 적기를 빨리 질문 하라 하시니 대저 잠깐 성 안에 머무는 것이 무엇이 민국에 관계가 되며 무엇이 사체에 흠이 되나니까 귀 청에서 기어코 몰아 내려는 뜻을 자세히 회답 하심을 바라옵
기사; 사회
1,327
孤兒院內訌의 理由
◀孤兒院內訌의 理由▶ (續)猝然三氏를 對야 院內의 各項費用을 渠自擔當겟다 宣言 後 諸般 文簿及印章을 監査다  故로 李春世氏가 回答기를 曾往院務의 衰 退은 專혀 院主가 獨斷的行事를 因인 즉 今에 整理 時를 當하야 又此瑣瑣事務를 干涉하면 前獘를 復蹈이니 不必監査라 하야 互相言詰하다가 李愚濬氏가 同日夕天에 其兄 李愚賢氏와 朴魯學 崔完植 諸氏를 請來談辦하야 期於히 印章을 監査 後 李春世氏 等에게 對하야 改正 規則은 院主의 承諾이 無 즉 頒布하야 施行지라도 本院에셔 有效로 認定키 不能하며 又所謂 新任員中에 院主의 命令을 服從치 아니하 者ㅣ 有하면 一幷觧任하다 恐喝 즉 李春世氏 何如하얏던지 議事會를 召集決議하겟다 回答 後에 再昨日에 議事會를 開하기로 一般 議員에게 口頭로 傳語하얏더니 同日에 李愚濬氏가 其兄 李愚賢氏와 同伴入院야 院主의 承諾이 無히 自由로 院事를 處理얏다고 李春世氏를 對야 論責 中 李愚賢氏가 突然히 爾等諸漢을 孤兒院任員으로 認定치 못겟다 으로 李春世氏도 亦是本院 諸般 權利가 吾等에게 在 즉 爾軰沒覺者로 院主를 許키 難하다 야 互相叱辱 互相爭詰얏다 其結梢가 如何됨은 姑未詳知거니와 隨聞更記노라(完)
사회; 기사
604
敍任及辭令
●(敍任及辭令)平安南道觀察府主事 金性濬 黃海道觀察府主事 朴觀永 依願免本官 ○任平安南道觀察府主事敍判任官八等 金銓 ○任黃海道觀察府主事敍判任官八等 金寅模 以上四月十九日侍從院侍御 元有常 厚陵令 吳聖根 顯陵參奉 李源鎔 昭慶園參奉 崔定鉉 永懷園參奉 金瀅 肇慶廟參奉 張敎遠 依願免本官 ○兼任掌禮院掌禮 奉常司副提調 沈相漢 ○任厚陵令敍判任官七等 寧陵令 嚴柱萬 ○任寧陵令敍判任官七等 尙衣司主事 洪寅燮 ○任尙衣司主事敍判任官六等 六品 吳聖根 ○圜丘壇祠祭署參奉 李健承 任顯陵參奉敍判任官八等 ○任圜丘壇祠祭署參奉敍判任官八等 弘陵令 宋以用 ○任弘陵令敍判任官七等 宗正院主事 趙秉億 ○任宗正院主事敍判任官四等 物品司主事 李圭贊 ○任物品司主事敍判任官六等 貴族院主事 金洛勳 ○任貴族院主事敍判任官八等 九品 李源鎔 ○任肇慶廟參奉敍判任官八等 愼柱晟 ○任侍從院侍御敍判任官六等 李載觀 ○陞敍判任官五等 外部繙譯官補 金均禎 ○陞敍判任官五等 法部主事 洪龍杓 以上五月二日忠州郵遞司主事 元用奎 右 該員이 司長代辦으로 該司遞夫가 郵遞物을 雇人遞送타가 見失함은 常時에 不善操飭한 責을 難免할지라 是以로 三個日罰俸에 處한 事 五月二日 (農商工部)宮內府主事 金鎭賢 右 該員이 供職에 踈忽미 有기 是以重譴責事 五月二日 (宮內府)
기사; 정치
599
兌換金券條例
雜報兌換金券條例第一條 兌換金券은 中央銀行條例第九條二項을 依하야 同銀行에셔 發行하며 金貨로써 兌換 事第二條 中央銀行은 兌換金券發行額에 對하야 同額金貨及金塊를 貯置하고 其交換의 準備로  事中央銀行은 前項外에 市場景況을 由하야 流通貨幣를 增加하기 必要하난 境遇에난 度支部大臣許可를 得하야 政府發行公債証書 度支部証券 其他 確實 証券又商業票를 保証하고 兌換金券發行을 得 事第三條 兌換金券의 種類난 壹圜 五圜 拾圜 五拾圜 百圜으로 定하고 各種의 發行하난 額은 度支部大臣이 定 事第四條 兌換金券은 租稅海關稅와 其他 與受에 無碍通用 事第五條 兌換金券의 製式圖形은 度支部大臣이 定하되 其標本은 發行期日前에 該大臣이 一般 告示 事第六條 兌換金券交換하기 請하난 者난 中央銀行本店又支店에셔 營業時限內에 何時던지 兌換 事但 支店은 本店에셔 準備金到達하기졍은 其兌換을 延期을 得 事第七條 金貨로 兌換金券交換을 請하난 者에 對하야난 中央銀行本店又支店에셔 無費交換 事第八條 度支部大臣은 中央銀行에 監査課員을 時時로 派送하야 兌換金券의 發行 額을 調査 事第九條 兌換金券이 染汚損傷하야 授受에 不便 者 中央銀行本店又支店에셔 無費交換 事第十條 兌換金券을 僞造者와 知其僞造하고 行使하는 者의 罪 刑法詐爲所干律의 依하야 處斷 事
사회; 기사
630
一般 人民의 注意
●一般 人民의 注意近日 斷烟同盟會로 因야 國債를 報償기로 國內 人心이 齊唱響應야 義金을 處處收送야 新聞에 揭揚이 連綿不絶니 一般人民의 愛國誠이 發興은 誠所感賀이나 巷說을 聞 則 或 領收証을 書持고 周行며 金額을 收集 者도 有고 或 收錢所를 各處에 設야 收金을 不規則게  者도 有며 或 此를 機會삼아 各郡에 人員을 派送야 勒集기를 謀 雜軰도 有다 說이 種種 入聞니 何處에셔 何人의 善心美擧로 發起얏던지 一般 國民이 되야 愛國誠의 所感으로 義金을 出捐 터이면 當初 發起所로 送致고 確實 領証을 受去거나 不然야 遠莫致之慮로 難便이 有거던 該附近 銀行에나 或 信實 新聞社에 送致고 領証을 受去 거시 義捐人의 妥當 事이며 收錢所를 何處에던지 專一케 야 秩序를 紊亂치 아니도록 注意 거시오 且一般 國民의 義務로 出義 바에 金額에 捐不捐은 誰某던지 自己心에 在이니 愛國心이 無 同胞을 愛國誠이 有하도록 或 指導勸勉하 거슨 可하거니와 義金을 勒集强行하 事 決코 悖類의 挾雜하 行爲에 出이오 國民의 義務가 아니라 하노니 旣是義金을 出 터이면 出金 人도 收錢所를 專一케 指定기를 注意고 發起收集 人도 收錢所를 何處에던지 純一케 指定고 義金을 出 人民에 姓名과 金額을 無一遺漏고 新聞에 廣佈야 一切 公眼에 確知케  거시 可다 노라
기사; 사회
688
London, Nov. 13th
SPECIAL TELEGRAMS TOTHE INDEPENDENT.London, Nov. 13th. Correspondent of Daily News in Paris states that the Prince of Orleans is busy preparing an expedition indhding a corps of Hussars from West Africa with object of assisting Lieut. Leontieff to forestall Sir H. H. Kitchener in occupation of Chartoun and all territories from there to Victoria Nyanza on behalf of Abyssinian expedition. He leaves Marseilles in the \"Deceoser.\" Lieutenant Leontieff is to pay King Menelick ten per cent of the receipts from the ten provinces
기사; 정치
528
敍任及辭令
官報○敍任及辭令○七月三十一日任郡主事敍判任官四等 兪台濬 △任郡主事敍判任官四等 岡田雅尾○八月三日兼任法部主事 裁判所書記 橫山富之助 △兼任裁判所書記 裁判所繙譯官補 榎本明次 △孫顯秀 趙東元 趙奎亨 李韓燾 張榮準 崔景植 金祉燮 崔翼進 車弘涉 任裁判所繙譯官補敍判任官四等○八月七日任中樞院顧問 從一品 宋秉畯 命利川郡在勤 郡主事 兪台濬 △命公州郡在勤(以上七月三拾一日內部) 郡主事 岡田雅尾 △依願免本官(八月四日內部) 內部主事 尹明燮 △度支部司稅局長 鈴木穆 度支部次官 荒井賢太郞 出張中代辦을 命홈(八月五日度支部) △補京城地方裁判所書記 海州地方裁判所書記 橫山富之助 △補光州地方裁判所書記 裁判所書記 榎本明次 △補永同區裁判所繙譯官補 裁判所繙譯官補 孫顯秀 △補平壤地方裁判所繙譯官補 裁判所繙譯官補 趙東元 △補咸興地方裁判所繙譯官補 裁判所繙譯官補 趙奎亨 △補釜山區裁判所繙譯官補 裁判所繙譯官補 李韓燾 △補海州地方裁判所繙譯官補 裁判所繙譯官補 張榮準 △補大邱地方裁判所繙譯官補 裁判所繙譯官補 崔景植 △補全州區裁判所繙譯官補 裁判所繙譯官補 金祉燮 △補京城地方裁判所繙譯官補 裁判所繙譯官補 崔翼進 △裁判所繙譯官補 車弘涉 補光州地方裁判所繙譯官補(以上八月三日法部) 木浦區裁判所判事判事 依田弘 補晉州地方裁判所判事判事 △平壤地方裁判所判事判事 福岡德次郞 補木浦區裁判所判事(以上八月四日法部)
정치; 기사
633
The Imperial household Department has requested the Department of Agriculture
DEPARTMENTAL NEWS.The Imperial household Department has requested the Department of Agriculture and Commerce to levy taxes of the trading houses in the port of Wondongpo in Yang-san district and that the receipts therefrom be sent to the Household Department. Also, the Department of Agriculture and Commerce must collect taxes from the manufactures of Korean paper in Kyengsang province for the Household Department. The Agricultural Department declined to comply with the request on the ground that such taxation was abolished by an Imperial decree some years ago, therefore the Department cannot take the step without authorization from the Council of State and the abolishment of the existing law
기사; 정치
700
叙任及辭令
●(叙任及辭令)任度支部協辦叙勅任官三等中樞院議官李聖烈、十月九日中樞院一等議官閔商鎬 任農商工部協辦叙勅任官三等、任農商工部叅書官叙奏任官四等奉常司副提調尹德榮、以上十月十日特免懲戒從一品趙秉式任寧邊郵遞司主事叙判任官四等趙羽永陞叙判任官三等農商工部主事朴熈陽○農商工部主事李文夏 漢城郵遞司主事吳炳日漢城郵遞司主事金昌洙陞叙判任官五等○學部主事崔恒鍚 學部主事李貞善 陞叙判任官三等○陞叙判任官四等學部主事尹泰應、以上十月十一日度支部叅書官金炳翕 宮內府照會를 據은즉 該員이 祭官行禮時做錯미 有다기 是以로 重遣責事、十月十一日 度支部○司法 判决宣告書全羅南道智島郡黑山島流終身罪人被告金鴻陸年四十八、漢城府西署羊洞前主事被告孔洪植年二十八、漢城府中署沙器廛洞平民被告金鍾和年二十三、漢城府西署石井洞熟手被告金永基年三十、漢城府西署小貞洞熱手被告嚴順石年四十三、漢城府北署壯洞熱手被告金連興年三十五、漢城府西暑蛤洞熱手被告金興吉年二十八、漢城府中署泥洞熱手被告姜興根年三十一、漢城府東署蓮洞寳賢堂書記被告金在澤年六十五、漢城府北署禁川橋寳賢堂書記被告趙漢奎年三十、漢城府東署蓮洞寳賢堂待令武監被告金在順年五十四、漢城府西署新門內召史金姓年二十五、漢城府南署苧洞寳賢堂軍士被告朴大福年三十四、漢城府西署內丼洞寳賢堂軍士被告崔善根年四十、漢城府西署內丼洞寳賢堂軍士被告金順龍年四十九、漢城府西署大平洞寳賢堂軍士被告田章大年二十一、漢城府北署碧洞寳賢堂軍士被告金敬石年二十五、漢城府西署內丼洞寳賢堂軍士被告田秉俊年二十九右被告 金鴻陸과 孔洪植과 金鍾和와 金永基와 嚴順石과 金連興과 金興吉과 姜興根과 金在澤과 趙漢奎와 金在順과 金召史와 朴大福과 崔善根과 金順龍과 田章大와 金敬石과 田秉俊等의 案件을 審査니 被告金鴻陸은 供稱호 偏被 國恩타가 陰曆本年七月十日에 流配라신 詔勅을 承 有罪無罪間不平至寃之心이 有더니 同日發配之路에 新門外金光植家에셔 暫住야 所携手帒中休紙를 搜出타가 前日에 滯症을 治療든 鴉片烟이 一兩重假量이나 剩存을 見즉 此物은 死藥인 故로 凶逆之心이 猝發야 欲犯至尊之意로 進 御시 洋科理에 調和以進라고 作別次로 來見 所親人孔洪植에게 給付申囑얏다며 被告孔洪植은 供稱호 黑山島流配罪人金鴻陸을 作別次로 新門外所留處에 往見즉 金鴻陸이가 一封藥을 出給曰此是死藥이니 御膳에 調進라 囑托기 陰曆七月二十日에 所親人金鍾和를 逢着야 同月二十五六日間에 來訪기 要얏더니 二十六日에 金鍾和가 果爲來訪기로 金鴻陸에게 受取 藥을 出給고 矚託호 此藥을 進 御茶에 調進면 一千元銀으로 酬勞리라얏다며 被告金鍾和 供稱호 寳賢堂庫直으로 進 御시 洋料理 擧行더니 本年六月二十一日에 不善擧行之致로 見汰 後에도 門票가 尙有기로 種種히 寳賢堂에 入去야 如前千涉이다가 同年七月二十日에 孔洪植을 逢着즉 孔洪植이가 同月二十五日六日間에 來訪라기로 二十六日酉時量에 孔洪植所留處에 往見즉 孔洪植이가 一封藥을 出給曰此是死藥인御茶에 調進 意로 金鴻陸에 矚託을 受에스니 汝以此藥으로 善爲調進면 當以一千元銀으로 酬勞리라기로 卽袖該藥고 寳賢堂廚房에 入去즉 時適無人이오 咖啡茶罐은 在於爐上故로 該藥을 投下얏다며 被告金永基와 嚴順石과 金連興과 金興吉과 姜興根等은 供稱호 渠等이 陰曆本年七月二十六日에寳賢堂에 入하야 進 御하시 洋料理熟手擧行하온바 咖啡茶中에 有頉하믈 不覺하와玉度睿候同時愆和하심에 至하얏온즉 惶恐遲晩이라하며 被告金在澤과 趙漢奎等은 供稱호 渠等이 寳賢堂書記로 進御하시 洋料理 看檢擧行이더니 陰曆本年七月二十六日夜에 進 御하시▣啡茶예 有頉을 不覺하와玉度睿候同時愆和심에 至하얏오니 不勝惶悚이라하며 被告金召史 供稱호 陰曆本年七月十日에 矣夫金鴻陸이가 黑山島에 流配되엿다하기로 新門外에 出往作別하온바 矣夫金鴻陸言內에 孔洪植의게 所託 事가 有하니 孔若付書여든 信傳하라하얏기 其五六日後孔洪植이 來見 時에 矣夫의게 有所受託與否 探問하고 裁書速付을 託之하얏스나 其事之裏許 未能得知라하며 被告朴大福과 崔善根과 金順龍과 田章大와 金敬石과 田秉俊等은 供稱호 俱以 寳賢堂軍士로 進 御하시 料理進供時에 擔運來往이오 造膳之節에 千涉이 無으로 御茶에 有頉은 不知하왓오나玉度睿候愆和하오심에 至하오니 惟切惶悚이라 其事實은 被告等의 陳供自服에 訂하야 明白지라 (未完)
정치; 기사
2,057
歐洲諸國의 畜產業槪况
●歐洲諸國의 畜產業槪况 (三) 和蘭의 畜產業和蘭全國의 經濟 牧牛에 依하야 重大 關係가 有하니 和蘭의 一部 商業에 依하야 其經濟를 圖하고 其大部 牧牛業에 因하니기 商業에 對하야도 東洋殖民地生產物貿易以外에 殆히 畜產品의 輸出에 係하고 最히 畜牛에 依하야 得하 者―多하니라 盖和蘭은 種牛를 繁殖히하야 世界各國에 輸出하고 畜牛生產物의다 及디스 製造하야 國外에 輸出하고 其牧牛方法은 瑞西와 全異야 和蘭의 牧牛 平地와 低地에 在하니 和蘭全國이 地勢低下하야 山을 見키 甚稀하고 海面보더 低▣ 處가 多 故로 堤坊을 設하야 海水의 浸入을 防하며 停溜 水 溝渠를 縱橫으로 通하야 排决케하며 海河近處에 排水에 用力을 不斷하니 此 他國에셔 得見치못하 現狀은 人의 知하바라 南으로 白耳義國境으로붓터 西北으로 北海에 至하고 東으로 獨逸國境에 至하기지 如斯으로 和蘭地勢 千變一律로 이라이 此를 云이로다 地勢가 如斯으로 農作物과 如 禾糓工藝作物等은 决코 不適하니 此國土에 在하야 牧草에 依하야 牧牛를 營業이 農業經營上最適▣은 自然의 理勢로다 然이나 自古로 和蘭은 牧牛에 用力하야 已自紀元後四五世紀時代로 牧牛及私製品으로 宇內에 有名하얏시니 現今全國이 牧牛로 農民의 業을 作은 實로 此에 由이로다歐洲에 大牧牛國되 瑞西及和蘭▣國을 比較하야 牧牛에 注意하 點을 指摘진 瑞西 地勢가 高燥하야 氣候가 乾燥하고 和蘭은 低温하야 氣候가 温潤하니 此를 畜牛의 健康狀態로붓터 觀 時 前者 大槪强健하고 後者 頗히 纎弱하니 特히 和蘭은 自來로 乳汁▣產의 多量에 用力하 結果로기 用途에 對하야 世界에 無比지나 一方으로 健康을 害하며 特히 肺結核病에 罹이 頗多하고 乳質도 劣惡지라 今에 此를 原產地에 就하야 實地로 視察하고 飼育者에 對하야 此를 問하야도 此病의 多으로 原因이라 本邦에 在하야 二▣年來로 或은호 스다인 牛라 穪하고 或은호 스다인후린진안스 牛라 穪하야 牛乳의 改良의 目的으로 此를 輸入하고 飼育은 各人의 知바라 牧牛에 有志 者 勿論이어니와 國民衛生에 用意하 者도 此에 不注意을 不得지로다 和蘭에 在하야 畜牛아니라 人民도 他歐國民에 比컨 健康치못하야 肺結核其他疾病이 多하니 此 氣候가 温潤하고 土地가 低濕에 基因은 論을 不俟▣바로다
기사; 사회
1,148
商會陳情
再昨日統監府에셔 商業會議所會員을 請야 近日商業界에 金融恐慌이 有 原因을 問니 該會委員李君弼崔敬淳兩氏가 徃야 陳情야 曰經濟上의 恐慌이 起은 實狀이오 其原因은 三端이 有니 一은 法律의 原因이니 昨年에 貨幣法을 發布야 貨幣를 甲乙丙三種에 分 故로 白銅貨所持者가 乙種이나 丙種에 屬가 恐야 所有貨로 物件을 買置얏더니 物價가 져落야 賣買가 絶 錢荒얏스며 二 上納의 原因이니 以前에 三南等地葉錢通用하 各郡의 上랍을 京鄕人이 外劃하야 物品을 貿取하야 京城에 賣却하고 度支에 上랍 國庫金이 商界의 資本되것이 多하다가 日本銀行과 郵便受取所에 盡랍하고 韓國商人은 上납錢을 應用치못하 故로 商界가 困難이오 三은 魚驗塞絶의 原因이니 代人信用으로 手形과 如히 魚驗을 通用하다가 魚驗이 塞絶하야 前日과 不如하고 通行이 殆無하야 直錢으로 出랍하기 困難이라 以上原因은 日本의 政策이 使然케이니 日本이 經濟上의 政策을 變하야 貨幣도 大韓貨幣로 大韓셔 發行通用하계하여야 此急을 庶可救濟하리라더라
사회; 기사
508
敍任及辭令
官報●敍任及辭令中樞院議官 洪暻模 仝 柳寅祥 仝 孟信在 仝 林承根 仝 林鳳來 依願免本官 ○正三品 申瑢煕 九品 洪極裕 仝 金永泰 仝 朴容根 仝 李時稙 任中樞院議官敍奏任官六等 ○解忠淸南道種痘事務委員 曹秉益 ○慶尙北道種痘事務委員 洪顯相 命忠淸南道種痘事務委員 ○命慶尙北道種痘事務委員 申台均 以上七月九日特免懲戒 正三品 安鍾悳 ○宗正院主事 張驥遠 仝 金思重 德陵令 金升昱 崇德殿參奉 朴龍鎭 崇善殿參奉 許◈鎭 箕子陵參奉 李應麟 平安南道觀察府主事 李芝成 濟州牧主事 李東植 依願免本官 ○尙衣司主事 李能雲 營膳司主事 金炳潤 任宗正院主事敍判任官六等 ○任尙衣司主事敍判任官五等 九品 金思重 ○任營膳司主事敍判任官六等 敦寧院主事 朴泰秀 ○任敦寧院主事敍判任官五等 六品 張驥遠 ○任德陵令敍判任官七等 純陵參奉 李鉉弼 ○任純陵參奉敍判任官八等 李永秀 ○任崇德殿參奉敍判任官八等 朴勝林 ○任崇善殿參奉敍判任官八等 許淡 ○任箕子陵參奉敍判任官八等 安昇植 ○任平安南道觀察府主事敍判任官六等 朴魯源 ○任濟州牧主事敍判任官六等 李宗勉 ○春川郵遞司主事 金性濟 任昌原郵遞司主事敍判任官六等 ○任春川郵遞司主事敍判任官四等 前主事 尹鴻植 以上七月十日補鎭衞第一聯隊第一大隊附 陸軍步兵參尉 李復源 ○陸軍步兵副尉 金弘植 陸軍步兵參尉 崔琦煥 補鎭衛第二聯隊第一大隊附 ○補鎭衛第三聯隊第一大隊附陸軍步兵參尉 羅鍾培 ○補鎭衞第三聯隊第二大隊附 陸軍步兵參尉 閔弼鎬 ○陸軍步兵正尉 李起銕 補鎭衛第四聯隊第一大隊中隊長 ○補鎭衛第四聯隊第一大隊附 陸軍步兵副尉 金光玉 ○陸軍步兵正尉 康利周 補鎭衞第四聯隊第三大隊中隊長 ○陸軍步兵正尉 金思稷 補鎭衞第五聯隊第二大隊中隊長 ○陸軍步兵正尉 趙基卨 補鎭衛第五聯隊第三大隊中隊長 ○補鎭衞第六聯隊第二大隊附 陸軍步兵參尉 朱鳳俊 ○補侍衞第一聯隊第二大隊餉官 陸軍二等軍司 沈相璉 ○補侍衞第一聯隊第三大隊餉官 陸軍二等軍司 權日善 以上七月二日
기사; 정치
878
軍部令第三號
○軍部令第三號 衛戍服務規則(續) 乙 夜間衛舍近傍을 通過 軍隊에 對 時第三十五條 軍隊가 夜間에 衛舍或獨 立步哨의 近傍을 通過 時 步哨、 衛兵司令、上等兵은 前條를 據야 問查이 可니 但軍隊指揮官은 上 步兵或步哨의 問 誰何에 答을 隊號로고 又暗號를 與 後에 衛 舍에 入이 無니라 丙 巡察에 對 時第三十六條 銃前步哨〔긋쳐〕를 呼 고 近接야 來 者를 止케야 彼가 止면〔누구〕냐 呼고 此에 應 야〔將校巡察〕或은〔下士巡察〕이 라 答면 步哨 衛舍에 向야〔將 校巡察〕或은〔下士巡察〕이라 呼 고 其他諸動作은 第三十四條를 據 지이라 斥候第三十七條 斥候 諸衛兵으로붓터 出니 夜間에 恒常守地近傍을 巡 候 者라 然나 時機를 因야 畫 間에도 此를 泒遣니라 斥候數及其巡候區域은 衛兵司令이 定고 且頻頻히 其發程時刻及通路 를 變㪅니 斥候 情况을 因야 將校下士上等兵或一等卒로 其長 을 任니라 衛兵의 人員이 寡少든지 或遠隔 地에 斥候를 出을 要 時 衛戍司 令官의 命을 依야 預備隊中에셔 此 를 出홈이 可니라第三十八條 斥候 指定 道路로 行 進이 可니 近隣에 非常 事가 不 有면 定路外에 出을 不得니 라第三十九條 第十六條의 規定은 斥候 의 巡回中에도 適用며 火灾時 斥 候가 迅速히 比鄰衛兵에게 報知이 可니라 斥候長이 他衛兵의 守地에 至면〔 問查를 終 後〕獨히 衛舍에 入야 衛兵帳薄에 其到達 時刻及其所屬 衛兵或預備隊의 名穪을 記고만일 非常 事를 聞見이 有면 此도 記 載이 可니라 斥候長은 步哨의 勤惰에 注意야 其 過失을 目擊면 此를 衛兵司令에게 申告이 可니라 斥侯長이 歸舍면 報告를 衛兵司令 에게 呈고 衛兵司令은 此를 自己의 報告에 記入야 衛戍司令官에게 進 呈니라第四十條 特別 時機에 夜間遭遇 兩斥候가 問查를 行 時 最初에 發 見 者가〔긋처〕라를 呼야 乙者를 止케고〔누구〕냐 呼며 自己도 亦 駐止니 乙者 直時駐止야 斥 候라 答면 甲者도 亦自己도 斥候라 唱고〔暗號압흐로〕呼고 兩斥候 長이 相對獨進야〔兩斥候長은 擬 刀或擬放銃고〕甲者 其階級如 何를 不關고 乙者로붓터 暗號를 受 고 此에 應 後에 巡察 事件을 互 相通報고 兩斥候 行進을 始 니라 第三章 巡察第四十一條 巡察은 畫夜로 此를 行 으로 畫巡夜巡이라 穪니 衛戍 司令官은 巡察의 數、種類、日時及巡 察만 守地를 定고만일 巡察 區域이 廣大 時 數個에 區分야 巡察케이 可니라 〔未完〕
기사; 정치
1,340
平野演說
雜報●平野演說警務學徒敎習所警部 平野氏가 敎習生에게 演說이 如左니 警務使閣下 今回에 此敎習所에 入學 敎習生을 撰定시 事, 前來敎習生은 自費로 야셔 敎習얏거니와 今回의 其方針을 改야 官費一軆로 敎習 事, 그러헌 敎習生은 從來의 觀念을 一掃야 警察에 實務야 從事들 當時 應行과 如게 敎習을 受치 아니셔 不可 事, 職務를 從事 當場에 專히 上官의 命令을 受야 其職務를 執行 것과 如게 此敎習所에 敎師와 職員의 命令을 準行야 進退의 從事 事, 然 今回 敎習期間을 三個月노 야셔 此間에 特히 職務를 從事헐 거시며 젼수히 敎習를 從事헐 事인 敎習生은 職務의 勉勵야셔 上項 敎習科目의 就야 特別히 勉勵야 敎習에 目的을 達도록 勵精熱心미 可 事, 敎習生을 敎習 目的은 警察의 改善을 謀 在니 敎習生은 其敎授를 受야 事項을 實地의 施行여셔 警察之面目을 一新토록 은 勿論이어니와 其敎習을 受 事項을 同僚의게 傳야셔 敎習을 受케  其模範은 警務使閣下셔 敎習시 方針을 改定신 本旨시며 敎習期間 僅히 三個月에 過치 아느나 然나 能히 時間을 利用야 專心一意야 敎習科目을 硏究야셔 大헌 稗益이 되도록 此를 敎習生이 用意헐 거시며 敎習生은 卒業後에 各巡檢의 模範이 되여 其目的을 達도록 믄 敎習生에 責任이니 若其責任을 達치 못 敎習生은 警務使閣下의 主旨를 不遵 거시니 故로 其主趣를 達랴면 一軆敎習生 諸人이 勉勵미 可헐 쥴노 說明홈
기사; 사회
743
VLADIVOSTOCK
A despatch from Tsuruga says that an immense quantity of cargo for Vladivostock has accumulated there of late, due to the impending closure of the Russian free ports.The “Hozan-maru,” which sailed on Mar. 10 and was the last ship to leave Tsuruga in time to reach the Siberian port before the closing date, was unable to comply with the overwhelming demand for cargo space, though her cabins and all available deck space were packed to the utmost.The R. V.F. steamer Governor Jaeske” leaving there the following day arrived at Vladivostock on the closing date and her efforts to land an enormous cargo duty-free were therefore futile.According to a Vladivostock dispatch, dated the 11th, the Minister of Finance has given instructions that, owing to the large quantity of imports recently landed all goods that the customs officials are unable to pass before the 28th day of the second month (Rnssian Calendar), shall become dutiable. It is therefore greatly feared that the “Hozan-maru” has likewise met with disappointment, and considerable anxiety is being experienced among the merchants concerned
정치; 기사
1,101
敍任及辭令
●敍任及辭令李鉉宰 金鍾根 許濬 具衡書 朴海明 具秉式 李泰鉉 柳晩秀 李忠健 吳麟根 韓鳳洙 李根雨 吳忠翼 宋瀅鎭 金重五 尹滋突 朴海達 李中榮 任管理署主事敍判任官八等 ○任厚陵參奉敍判任官八等 九品 洪德周 ○正三品 尹在衡 六品 金箕述 九品 李昌年 仝 張載杰 仝 董漢祐 仝 金昌鎬 仝 朴永勳 任中樞院議官敍奏任官六等 ○李鍾曄 柳玄 任農商工部技手敍判任官六等 ○咸鏡南道觀察府公立小學校敎員 李選鎬 任洪原郡公立小學校敎員敍判任官五等 ○前敎員 李錫榮 任咸鏡南道觀察府公立小學校敎員敍判任官四等以上十二月十二日命掌禮院卿敍勅任官三等 宮內府特進官 趙秉弼 ○命知敦寧院事敍勅任官三等 正二品 金學洙 ○侍講院侍從官 鄭在悳 通信司電話課主事 崔雲先 仝 朴俊明 仝 李恩 仝 鄭達順 鄭鍾煥 仝 片大鉉 仝 鄭休璿 仝 洪建杓 管理署主事 李鉉宰 仝 金鍾根 仝 許濬 仝 具衡書 仝 朴海明 仝 具秉式 仝 李泰鉉 仝 柳晩秀 仝 李忠健 仝 吳麟根 仝 韓鳳洙 仝 李根雨 仝 吳忠翼 仝 宋瀅鎭 仝 金重五 仝 尹滋突 仝 朴海達 仝 李中榮 農商工部技手 李鍾曄 仝 柳玄 依願免本官 ○任侍講院侍從官敍判任官八等 翼陵參奉 金永德 ○任翼陵參奉敍判任官八等 社稷署參奉 盧正容 ○任社稷署參奉敍判任官六等 九品 鄭在悳 ○李承瑾 趙抖煕 任農商工部技手敍判任官六等 ○依願免本官 法官養成所敎官 丁學秀 ○任法官養成所敎官敍奏任官六等 法部主事 安致潤以上十二月十三日任中樞院議官敍勅任官四等 正三品 韓永源 ○農商工部技手 李承瑾 仝 趙抖煕 依願免本官 ○高升觀 尹宰善 任農商工部技手敍判任官六等 ○免本官 三和電報司主事 金路碩 右난 三和電報司長 鄭友憲의 報告書를 據온즉 該員이 入直에 在야 招朋類而賭技타가 擧措乖當이라 얏기 爲先免本官以上十二月十四日
기사; 정치
808
李在明公判記
●李在明公判記 (第一報續)△(裁)六穴砲의 買収及借得을 全泰善以外에 趙昌鎬도 幷力求之乎아△(李)趙昌鎬와 一言도 說道치아니얏노라△(裁)全泰善이 京城지 六穴砲幾柄을 持來야 被告에게 給얏요△(李)幾柄을 持來은 不知거니와 余에게 借給 者 一柄이라△(裁)二柄인듯데△(李)否△(裁〕斷刀二柄을 持얏지△ (李)然△(裁)此 從何得之乎△(李)檢事가 問에 詳答얏거니와 此亦全泰善에게셔△(裁)二柄을 皆△(리〕全泰善에게 一柄을 得얏 此 小刀이라 後에 破碎얏고 押収된 者 余가 平壤에 在 時에 日本人刀物行商에게 二柄을 買置 者이라△(裁)押収되지아닌 者 何處에 在고△(李)何△(裁)刀二梃을 買置얏다니 其餘在것△(李〕가방에 藏置얏더니 其後 何如히되엿지△(裁平壤에 在 時에 諸般凖備를 整頓 後十二月十三日頃에 上京야리 完用리 容九를 殺 意로 金秉錄에게 通知엿다지△ (李)否△(裁)金秉錄이 贊成얏다지△(李)問意를 未觧니 詳言라 言이라것은툭탁이 不同즉△(裁)金秉錄에게 書信을 送야 召來얏다지△(李)金秉錄을 召도 亦是理由가 有얏스나 書信에 余가 商業을 經營터인즉 同事고만엿더니 金이 答狀기를 旅費가 無다으로 旅費를 送고 速上을 催促얏더니 數日後金이 上來얏 故로 余 初에 試驗的으로 問答 後舉事 事에 言及즉 金이 前述과 如히 自轉車를 乘고야 云云糢糊說去으로 余 金의 內意를 知고 謝絕얏노라△(裁〕金秉錄은 何處로 往얏뇨△〔李〕其後리 交淡家에셔 相逢즉 金이 覲親次歸家겟다 云더라△〔裁〕金丙錄을 拾二月卄二日에 被告家에셔 相逢얏다지△〔李〕其來不來를 記憶치못노라△(裁)李東秀△(李〕李東秀 同居 人인데△〔裁〕金秉錄에게 說吐닛가 金이 贊成얏다지△〔李〕글세 好다더니 後에 自轉車云云等事를 云으로 謝絕얏셔요△(裁)檢事의 第一、第二、第三審查를 見즉 被告가 初에 此를 名譽로 知얏던지 單獨히 行얏다고만더니 後에 漸次同志連累가 有이 發見되며 或은 砲로 成은 錢으로 助力얏다고 記얏더니 今에 亦時關係가 無다 云니 何其前後說이 相違乎아△(李)何가 相違乎아 其時에도 問로 有 事를 答얏고 今에도 問로 有 事를 答인데 〔裁〕初着手 者ㅣ失敗면 後着手者㪅起야 如此히 目的을 期達자은 何에케 言인▣△(李)金丙錄과 李同秀에 言얏노라△(裁李完用에게 着手얏스나 目的을 未遂얏고 李容九에게 尙今지 着手도못얏슨즉 到今感想이 何如오△(李)李容九의 事 余에게 問 必要가 無도다 李容九 昨年七月에 殺랴다가 變㪅얏고 又李完用의 生死 不知노라△(裁)李完用을 法國敎堂에셔 殺랴다가 車夫朴元文의 捍拒를 當야 短刀로 車夫의 左背를 刺으로 車夫가 重傷야 畢竟死에 至을 知乎아△(李)車夫事 不知고 但李完用을 刺다가 警護巡查의 圍繞을 逢야 短刀를 亂揮이로라△(裁)刀를 亂揮 時에 刀가 車夫의 左背에 入야 同人이 死에 至얏슨즉 此에 關야 如何히 感想뇨△(李)車夫事 不知△(裁)第一審查時에 車夫가 妨害야 刀을 奪랴으로 車夫를 刺殺얏스나 詳細 不知다더니△(李)學事다가 巡查에게 被捕야 李完用家에 往즉 何如 女婆二名이 足을동동이 頓면셔 車夫의 死을 說去說來고 哭泣으로 此를 因야 車夫가 死줄은 知얏노라○裁判長이 起身야 李在明의 審問이 畢을 佈 後暫時休息을 告니 時 正히 十二時四十分이라 (未完)
사회; 기사
1,702
宮禁令奏下
宮內大臣李載克氏가 肅청宮禁에 對야 宮禁令을 奏下얏 其規則이 如左더라一宮禁의 出入은 宮大臣이 監督에 屬니 宮殿에 侍從院卿이오 宮門에 主殿院卿이 管掌이라一宮殿宮門의 出入에 門票 用이라一宮殿에 票 侍從侍陪從武官其他殿의 職務를 帶 者及各官衙長官의게 限야 此를 交付이라一宮門之票 官吏及其使役者로 宮門出入에 必要가 有 者의게 限야 此를 交付이라一左開各官은 宮殿出入에 門票를 不要이라 但宮殿에 進기 前에 侍從院卿副卿이나 又 侍從을 經야 奏請允許를 經을 要이라 議政參政各部大臣署理大臣즁樞院議長副議長시陪從武官其他召命을 受 元老大臣特進官承候官一現職軍人警察官으로 制服을 着用 者에 限야 宮門票를 不要이라一宮殿門票 所持 者 宮門지票의 所持을 不要이라一物件의 運搬에 物件票를 用이라一門票 出入 際오 物件票 搬出 際에 各門警察官吏의게 必示이라一本令에 違背 者 冒禁擅入律를 依야 照處이라 門票 貸借行使 者도 亦同이라 門票幷物件표形式及交付의 規則은 宮大臣이 別定이라本令은 頒佈日로부터 施行이라 從前宮禁에 使用 諸証표 本令頒佈日로부터 勿施이라
사회; 기사
567
部令
○部令 看守採用規則을 左갓치 定홈 隆熙二年六月十八日法部令第六號 看守採用規則第一條 看守 身軆檢查及學述試驗에 合格 者中으로 採用홈第二條 左記各號의 一에 該當 者에게 學術試驗을 省略홈 但第五號에 該當 者에게 特히 其技能에 就야 試驗을 行도 有홈 一、判任文官以上의 資格이 有 者又 判任文官以上의 職을 經 者 二、陸軍下士以上의 職을 經 者 三、看守精勤證書가 者 四、前에 看守의 職에 在야 退職後滿三個年을 經過치아니 者 五、特別 技能이 有 者第三條 左記各號의 一에 該當 者 採用을 得지못홈 一、禁獄以上의 刑에 處얏든 者 二、懲戒에 依야 免職된지 滿 個年을 經過치아니 者 三、身分에 相當치아니 負債가 有 者又 性行이 不良 者 四、年齡이 二十歲未滿되거나 五十歲以十되 者第四條 身軆檢查 左記標準에 依야 行 軆質이 善良고 身長이 五尺以上이며 姿勢와 容貌가 醜惡지아니고 全身의 機能이 健全며 疾病이 無 者第五條 學術試驗은 左記科目에 就야 行 但苐二號以下의 科目에 就야 其一科目又 二科目을 省畧을 得홈 一、刑事法令及監獄法規의 大要 二、本國歷史及本國地理의 大要 三、作文 四、筭術 (加减乘除)第六條 學術試驗은 身軆檢查에 合格 者에게 就야 行홈 學術試驗은 筆記와 口述에 二種으로 區別야 筆記試驗에 合格 者에게 就야 口述試驗을 行홈第七條 身軆檢査及學術試驗을 執行케기 爲야 委員을 置홈 委員은 典獄이 部下의 官吏中으로 命홈第八條 學術試驗의 合格은 一個年間此를 有效로홈第九條 看守로 採用랴 時 豫先左의 誓書 徵이 可홈 (未完)
기사; 정치
811
宮內府所管各宮革罷沿革
●宮內府所管各宮革罷沿革原來 各宮家 皇室에 直轄야 進御擧行과 景孝殿 懿孝殿 享需擧行을 掌 處所인 各該宮庄收入은 年年退縮야 假令 一年一宮收入이 五萬圜되든 金額이면 五分一卽一萬圜되기 難고 各宮進排 年年增加야 假令 一宮一年支出이 一萬圜 되 金額이면 五倍卽五萬圜以上에 達야 各宮四兼役卽貿易庫直使喚 等이 負債如山야 假令 每名 一千圜以上으로 至一萬圜지 各該宮에 對야 債權이 有니 此等兼役이 本是赤立之勢로 進排擧行다가 無根錢巨額負債에 達야 困難 境遇에 至은 勢固然矣라 然而 該兼役 等이 如此巨役을 負고도 能히 繼續야 無資本으로 浩大進排를 擧行은 其利益은 亦從以夥多이니 其巨大利益을 得은 進排物價에 十一除 十二除 等 利益이 有고 且各樣 物品進排時에 假令 牛臀 五十部進上命令書가 有면 此를 半額式 三分一進排고 其餘 代價細音于物品領收者니 ◈利上取利法也라 所以로 原進排物品이 一百圜이 되면 各該宮會計磨勘은 二倍 或 三四倍되니 兼役이 雖曰 出債擧行이라도 及其所捧之日에 巨利를 得 故로 假令 各宮兼役一窠傳授錢이 三四十萬兩式되고 一次 各宮所任 或 兼役이 되면 巨富가 되야 退去歸家야 或 領尉官도되고 守令도 되 慣例라 猝富者出면 猝貧者亦出은 理之常也라 故로 以上結果로 各宮家負債 大則 二十餘萬圜 小則 十餘萬圜야 各宮所負債額이 七十餘萬圜에 至고 年來 進排던 常例 幾爲廢止고 各宮庄土 私自換放야 上納은 凋殘無餘고 宮屬은 各自作家야 冷笑宮家興亡고 各該家屋은 或 私自貰給야 認作己物고 鄕舍音及監官輩 秋收官 等은 宮糓을 偸食으로 爲能事야 假令 一百石所出 되 宮庄이면 導掌 五十石 監官 二十石 鄕舍音 十石 秋收官이 十石 合 九十石分食고 十石租包나 十石租代錢으로 納宮收尺이면 磨勘되얏다 고 該宮에셔 此를 收야 捧上冊에 謄錄야 收入支出를 計筭니 以上各條를 槪論건 年來 宮事之腐敗 已無可論이오 各該宮之自致衰亡이 已久矣라 然而 此를 一次 改革랴고 甲午年時代에 金宗漢 鄭秉夏 兩氏가 主張다가 內人內官의 關係를 抗拒치 못야 實施치 못되고 其後 戊戌 己亥年分 李容翊氏가 此를 改革랴다가 實行치 못고 拖至今日이러니 始於昨年十二月頃에 陛下게셔 時機不然을 洞屬사 各宮事務整理委員長以下委員을 選出시고 改革方針은 宮內府顧問官의게 委任責成시니 顧問以下가 欽奉聖意晝宵勵力야 此를 經營다가 第一着手四宮一司를 革罷고 宮屬을 觧歸고 宮司量案文簿를 句管며 第二着手가 三宮句管이니 三官은 祭亨인 故로 革罷치안코 所有財産만 移來며 無用宮屬은 除汰고 實用者幾人만 留存케 고 一般 應用을 支辦 壽進宮內에 供進所를 設寘고 進排擧行及一般 亨需를 擧行얏더라
사회; 기사
1,297
學有欺乎
⊙(學有欺乎)保寧居 兪鎭相이가 本以名家後裔로 受業高門야 居家에 自稱學者라 고 行衣를 着고 轎子를 乘고 京鄕에 出沒더니 今月分에 三淸洞 居 前尉官 金永復에게 來야 言曰 洪州居 富民 金司果를 威脅면 錢幾萬兩을 得리니 我의 計畫로 行라 니 金尉官이 慾浪이 大漲야 法官貌樣으로 下隷幾名을 率고 該郡 金司果家에 到야 法司命令이 有다 稱고 京部로 捉上할 中路에셔 兪氏가 金尉官을 逢야 佯驚曰 是何故也오 金尉官曰 以法官之令으로 捉去노라 니 兪氏가 金司果더러 謂曰 錢萬兩만 出給면 蒙放리라 니 金司果曰 君非法官이니 엇지 罪人을 任意放解리오 고 上京다가 水原 等地에 到야 金尉官이 金司果더러 兪氏의 前後設謀를 言고 帶同歸家야 欵待幾日에 無事下去케 엿더니 金氏가 高等所에 其事由를 告發 金尉官과 兪鎭相을 捉致엿 兪氏가 行衣를 着고 入庭지라 法官이 問曰 所着은 何衣오 曰 有袖周衣로라 此衣 何人이 着고 曰 學者의 所着이로라 法官曰 汝以學者로 如此行爲를 敢做야 고곳 監獄署로 捉囚엿 人이 謂기를 近日에 學者라  類 擧皆如此다고 더라
기사; 사회
563
리용익씨 남병 에 민요 만 것이 다고
원문 : ○ 리용익씨 남병 에 민요 만 것이 다고 북쳥 란향 최관필 강셕윤등이 류경 졔인을 회동 야 그 죄를 폭박 고 나 기시에 향 안 쳥금안 로 나고 민간에 몃십만량 동 여 리씨를 함모 것도 뎌의 쇼위요 쟝쥰쳘 젼용셥 등을 식혀 거화 것도 뎌의 쇼쵹이요 그 후에 거화 부비라 칭고 호에 엽셔돈식 슈렴 야 합 삼쳔륙량 람식 것도 뎌의 쇼욕이 어 이졔 리씨를 협셰 코져 야 법부에 그 죄를 포  것이 남이 나를 보기를 내가 내 폐간을 보것과 지라 이걸노 두고 보면 북쳥 란향은 셰계에 뎨일이니 엇지 그 죄를 용대 리요 번역문 : ○ 이용익씨 남병사 때에 민요 만난 것이 애매하다고 북청 난향 최관필 강석윤등이 유경한 제인을 회동 하여 그 죄를 폭박 하자고 하나 기시에 향안 청금 안 하루 나고 민간에 몇 십만 냥 동재 하여 이씨를 함모 한 것도 저희 소위요 장준철 전용섭 등을 시켜 거화 한 것도 저희 소촉이요 그 후에 거화 부비라 칭하고 매 호에 엽 서 돈씩 수렴 하여 합 삼천육백 냥 남식 한 것도 저희 소욕이 어늘 이제 이씨를 협세 코자 하여 법부에 그 죄를 포백 하자 하는 것이 남이 나를 보기를 내가 내 폐간을 보는 것과 같은지라 이걸로 두고 보면 북청 난향은 세계에 제일이니 어찌 그 죄를 용대 하리오
사회; 기사
654
商業會議所에셔 財政顧問目賀田氏의게 請願
商業會議所에셔 財政顧問目賀田氏의게 請願 全文이 如左홈右請願은 本商業會議所에셔 自昨年七月以來로 財政整理의 影響을 被야 倒産蕩業 巨細商民을 징救면 金融機關의 圓滿流通을 務圖기 爲야 這間其救濟의 方策을 政府與閣下의게 對야 哀訴懇求이 一再의 不止얏거니와從來로 何等善良의 措施가 無야 今日에 至도록 恐慌의 悲慘을 得免치 못은 實로 본商業會議所에셔 深切浩歎바 ㅣ라 不意今者에 我政府當局者與閣下의 另念周施의 勞와 及其貴國政府의 保隣大意를 賴야金一百五十萬圜을 十年間無利子無擔保로 貸與야 專히 我韓人民의 商業恐慌을 矯救扶持케 하신 此盛意 實로 感泣不已하 라 日昨본商業會議所로셔 政府에 情願하야 該全額을 不日進越하사 漢城中央에 在 天◈銀行漢城◈行과 漢城共同倉庫會社等三箇所로 適應排下하심을 切願하오바今玆에 又閣下의 高明하신 措劃으로 和協贊同하시와 該金額을 不日辦下케 하시고 其於相當 指揮施措의 方向을 訓示하시와 아모죠록 該原번의 實力을 損傷치 아니케 하시고 此倒懸矜惻의 民命을 極救回甦케 하심을 千萬哀籲하 라본請願中에 暫且疑問이 有 者 何等理由와 如何關係로써 該金額을 何必此右陳三箇所로만 劃下이 妥當하뇨 하 句語一니 此에 對하야 其理由關係 槩略陳述하오리다 未完
기사; 사회
610
We are sorry to learn that Mrs. Gifford is down with quite a bad attack of dysentary
CITY AND COUNTRY.We are sorry to learn that Mrs. Gifford is down with quite a bad attack of dysentary.An eclipse of the moon occured at midnight of the 22nd, it was quite distinctly observed in Seoul.Youn Young Hi has been appointed Chief Inspector of Southern Chulla, Province. For this position it is said be had to pay eight thousand yen.On the 22nd inst a special State Council was summoned, to take into consideration, the advisabilty of forming an Office for Board of trade purposes.Sufficient [rain has fallen in the pro-vinces of Chung Chong, Chulla and Kyeng Sang, if we are to judge from news received by wire from the south.His Majesty has given orders for a Geneological Chart to be compiled, with the names of all the male members of the clan incribed upon it. The Emperor´s surname is Yi.Dr. and Mrs. Underwood returned to Seoul on Monday and went straight to their house at Han Kang. We are plea-sed to know that Mrs. Underwood has recovered somewhat from her recent illness.Sim Sang Hyun, and Min Pyeng Han ex ministers who were sometime since banished for ten and fifteen years, for creating a disturbance among themselves, in the Palace, have been pardoned by His Majesty.H. B. M´s. Despatch vessel Alacrity arrived at Chemulpo on the 21st inst and left on the 23rd for the purpose of taking the British Charge d Affairs on a visit to the ports round the coast of Korea.A survey is being made at Chemulpo by the popular Harbour Master of the Port, for the purpose of making a public road, twelve metres wide, from the settle-ment to near the Rev. G, H. Jones´ residence.The agreement existing between the Korean Government and the French concessionaires of the Seoul-Eui Ju Railway requires that work be began, by the 1st of July, otherwise the concession is to be given up.An enterprising Korean, Kim Chi Ryoung is forming a company for the purpose of running steamships round the orean coast, and permission has been given him to do so by the Department of AgricultureThe Government has decided to send Yi Pyeng Mu, the Chief Instructor of the Military School, to Puk Chung in South-ern Hain Kyeng as Major of the troops there. And to appoint as his successor Cho Heui Bom as Chief Instructor of the military school, Mr. Cho was educated in one of the iniltary school of Japan.On the Departure of Prince Henry from Chemulpo, he presented a very handsome scarf pin to Mr. H. Kalitzky, upon whom fell the burden of keeping every thing in order and through whose attention no hitch occured.We understand that the Contract made by the Government with H. J. Muhlensteth Esq, who is in charge of the telegraph service of Korea, expires this month. The Russian Minister has made application for a renewal of the contract, with an increase in stipend of course.The closing exercises in connection with Pai Chai School take place this afternoon at 2 Oclock in the Chong Dong Church, Seoul, The programme is quite an inter-esting one, and includes as speakers. TheMinister of Education and Prof Hulbert F. R. G. S. The public are heartily invited to be present.The Government at the instance of Sin Ki Sun have ordered the peddlers to Guard well the five wards of the city, and have issued staffs to them with the Government mark burned into them, passes have also been given them, which neither police, nor soldier, dare question, stringent orders have been issued to them, to allow no one on the streets after 8 p. m.An important discovery from the Korean astrologer´s point of view has been made in Chulla Province, at the Capital, Chunju, in the shape of a monument which is said to have been erected some long time back, the Characters on it number fifty-two. It was discovered, while some excavating was goin on, preparatory to laying the foundation for a Monument which the present Emperor is erecting in memory of his ancestors. The find is looked upon as a good omen.There appears to be some row in the camps in connection with the arrest of Im Pyeng Kil, it turns out that the soldier who has been promoted, was not the real captor, but only a thief, a policeman first captured the cnlprit and bound him, and was leading his man away, when the sol-dier, who was a corporal, appeared on the scene and took the prisoner away from the policeman, and was enabled to retain possessiorr of him through the help of some of his comrades, and the whole affair was kept quiet long enough to enable him to receive official recognition
사회; 기사
4,443
崔在學金仁즙申尙敏田錫俊李始榮諸氏疏本이
崔在學金仁즙申尙敏田錫俊李始榮諸氏疏本이 如左홈云云伏以春秋曰亂臣賊子人人得以誅之以其罪惡彌天영地弗可留於晷刻之間也嗚呼徃在丙子日本國全極臣黑田淸隆及井上馨與我官申헌尹滋承會議우江華府其略曰朝鮮自立之邦保有與日本平等之權嗣後兩國欲表和親實須以彼此同等之禮相待불可毫有侵越猜嫌乙未日淸馬關之約第一欵曰朝鮮國獨立自主兩國認明불可侵越光武八年三月露日開仗之初日本對列國聲明書曰由來韓國之獨立及土地主權之保證戰爭之目的噫日本之於我韓苟有侵奪一毫之權一片之土其背信투盟非徒有列邦之異論亦불免 天인之共怒也今露日之媾和纔成所謂慰問使이藤敢提出三件條約占奪我三千里彊土欲蔑亡我五百年宗社二千萬生靈孰불欲痛哭死義乎彼逆臣朴齊純李址鎔李根澤之徒擅自捺印以致外인之藉口然萬國公法條約論第四百◈章曰雖國主親筆書押如被인逼迫불得自由則其約其皆廢지況我 皇陛下雖被再三迫졍終若曰朕殉宗社決불認許且參政臣以死불許則이藤이雖뷸知公法所載亦불可認지以立也明矣但此逆臣朴齊純李址鎔李根澤輩俱以喬木世臣擧宗社疆土一朝欲與外인而使全國生靈盡作奴隷其逆지罪雖萬戮千斬猶可輕也伏願 陛下亟付有司以正王章亦復聲明우世界列邦俾知新條約지初無成成立以完我獨立無疆休臣等無任泣血祈懇지地
사회; 기사
522
README.md exists but content is empty. Use the Edit dataset card button to edit it.
Downloads last month
33
Edit dataset card